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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이병태·이창규 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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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이병태·이창규 父子
  • 박미리 기자
  • 승인 2016.05.0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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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학 한길 함께 걷는 ‘영원한 파트너’

치과계 곳곳에 치과의사의 대를 잇는 가족이 적지 않다. 본지는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을 키워드로, 부모-자녀세대 간의 소통, 노련함과 발랄함이 공존하는 치과의사 가족 이야기로 세대 간의 고민을 나누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가교역할을 하고자 패밀리 코너를 마련했다. 이번 호에는 74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환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병태(이병태치과) 원장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발하게 치과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규(맨하탄청원치과) 원장을 만났다<편집자 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전쟁과 피난. 대한민국의 역사와 치과계 역사를 고스란히 경험한 이병태 원장과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성장한 이창규 원장. 시간이 지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됐고,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치과의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이병태 “아들은 내가 치과의사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죠. 특별하지 않아도 환자를 진료하고, 학회나 세미나에 다니고, 그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 이창규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치과보철기공학』이라는 책을 내셨을 때 머리말 앞에 ‘일규, 창규, 영웅’ 세 아들에게 이 책을 주련다고 인쇄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것이 많이 기억에 남았는지, 막연히 ‘내가 치과의사가 돼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형이 치과대학에 들어갔다면 저는 유전공학 쪽으로 진로를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 이병태 “아들이 셋인데, 셋 중에 누구 하나라도 치과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어요. 마침 둘째아들인 이창규 원장이 공부도 잘했고, 성품도 훌륭했고요. 학교 교육만 제대로 잘 받는다면 특별히 제가 조언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웠죠”

그렇게 같은 길을 걷게 됐지만 이들 부자는 각각 다른 치과에서 환자들과 만나고 있다.

- 이창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아버지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개원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는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계시고, 저는 인천에서 7명이 함께 공동개원해 각각 치과를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함께 일하면 에너지가 배가 되는 법. 부자는 지금도 ‘함께 일했다면 어땠을까’를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 이병태 “과거에 병원을 같이 운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치과를 이전하게 되면서 무산됐어요. 만약 지금이라도 아들과 함께 병원을 한다면 굉장히 편하겠죠. 그런데 같은 분야에 있는 가족들이 의외로 같이 일하기 쉽지 않아요. 그 이유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기 때문인데 저는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 이창규 “제가 학교에 다닐 때 전공 서적을 보잖아요. 아버님은 워낙 현직에 계신지 오래 되셔서 학생들이 어떤 책으로 공부를 하는지 모르니까 제 가방에 있는 책을 꺼내 보시더라고요. 전에 비해 임상증례나 새로운 용어들이 새로 추가되기도 하고, 그렇게 제 책을 보시면서 ‘요즘은 이런 것들을 배우는 구나’라고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부자는 지난 2014년 ‘이치의학사전’을 발간했다. 치의학사전 앞에 부자의 성을 딴 ‘이(李)’를 붙였다. 사전은 무려 16만개가 넘는 어휘를 수록했고, 가로 21.4cm, 세로 27.7cm, 두께 8cm, 페이지 수도 2154페이지에 달하는 매우 방대한 양이다.

- 이창규 “사실 치의학 사전 초판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에 출간 됐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출판기념회 다음 날부터 다시 단어장 정리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치과대학에 입학, 졸업, 보철과 수련을 거치며 간단한 자료정리부터 도와드리기 시작 했고요. 그래도 제가 도와드린 부분은 미약하죠”

- 이병태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굳이 한 곳에서 같이 앉아서 할 필요가 없으니까 공동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작업했어요. 단어카드는 일일이 다 손으로 작성했죠.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면 흐름에 따라서 새로운 용어가 추가 되잖아요. 그것까지 정리 해야해서 작업량이 더 많아졌어요. 그래서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작업해서 지금의 이치의학사전이 탄생한 거예요”

 

 


- 이창규 “힘들게 만들어서 출간한 만큼 이치의학사전의 증보판을 디지털화 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이들 부자는 떨어져 있지만 서로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이창규 원장은 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할 때 교수님이나 선배님들을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좋다며 웃어보였다.

- 이창규 “아버지는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분이세요. 굉장히 부지런하시죠. 개업의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치의학사전, 수필도 출간하시고, 남북치과교류와 학회에도 열정적으로 임하시고요. 또 바쁜 시간을 쪼개 등산도 하시면서 다양한 일들을 직접 해내세요.

- 이병태 “아들은 어린시절부터 든든했어요. 뚝심 있고, 변덕스럽지 않고요. 대인 관계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았어요. 지금 정진하고 있는 학문에 대해 항상 고민하면서, 환자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좋은 성격도 치과의사로서 가진 큰 장점이죠”

끊임없이 학문에 대해 고민하고 정진하는 부자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아있었다.

- 이병태 “치과의사는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직업이에요. 자기가 생각해서 실천하기 나름이죠.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처럼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도 좋고, 평범하게 살면서 지금 눈 앞에 있는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은 삶이죠.”

- 이창규 “치과의사가 예전처럼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거나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타 분야에 비해서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전에 저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 분들이 오랜만에 병원에 들르셔서 ‘덕분에 음식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다’는 인사를 듣거나 진료봉사에 참여해 제 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 보람을 느끼곤 하죠.”

치과의사로서 두 사람은 한눈팔지 않고 같은 학자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었다.

- 이창규 “예전에 어떤 분이 저희 아버지를 보면서 ‘팔방미인’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치과의사로서는 물론 여러 분야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세요. 아버지는 제게 닮고 싶은 ‘팔방미인’치과의사죠.”

- 이병태 “어릴 때부터 차분하고 꼼꼼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진료도 잘하지만, 환자들에게도 굉장히 친절하게 잘 해요. 가족은 누구보다 가깝잖아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제 아들이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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