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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시론] 배려(配慮)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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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시론] 배려(配慮)의 기술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4.12.1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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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치대 보존과학교실) 교수

 


일본 어느 시골 상점에 남루한 옷을 입고 아기를 업은 젊은 아이엄마가 분유를 사러 왔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하나를 고르더니 값을 물어보는데 생각보다 비쌌던지 아무 말 없이 내려놓고 그냥 가게 문을 나가는 것을 점원이 불러 세웠다.

점원은 몰래 분유통을 찌그러뜨린 후 아이엄마한테 이 분유는 통이 찌그러져서 팔 수가 없으니 반값에 가져가라고 했다.

어디선가 잡지 구석에서 이 글을 읽은 후 한동안 생각이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그 점원의 따뜻한 배려가 가슴에 저려왔기 때문이다.

配慮는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이지만 한자풀이를 해보면, ‘걱정(慮)을 나누다(配)’이다.
즉, 다른 사람의 걱정에 내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다.

배려(配慮)에서 배(配)는 술단지(酉)를 마주하고 앉은 사람(己)이라는 뜻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배우자의 의미로도 쓰인다.

세상에 배우자 만큼 서로의 걱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또 있을까. 몇 년 전인가 『배려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다 읽지는 못했어도 꽤 좋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배려에 무슨 기술이 필요할까마는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작은 선심이 오히려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가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 그렇다.

얼마 전에 강남 부자동네 아파트 경비원이 인간적인 모욕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사실 경위는 아직 확실치 않다지만 돌아보면 이와 비슷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음식점에서도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종업원에게 야단을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번이라도 본인의 자식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렇게 까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말에는 易地思之가 있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그것이고, 영어에는 Understand가 있는데, 다른 사람보다 더 아래에 선다는 뜻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배려인가.

가끔 노인네들이 며느리나 아들 손에 이끌려 진료실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가 본인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구강상태도 엉망이고 따라서 전체적인 치료비도 만만치 않게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무턱대고 아픈 이만 빼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특별히 그 분들의 덴탈아이큐가 낮아서가 아니라 다분히 아들이나 며느리의 경제적인 부담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자식들은 그래도 마음먹고 온 거니까 치료를 받으시라고 하고 노인네는 집에 가자고 하고,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럴 때는 이야기 속의 점원처럼 그 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슬기롭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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