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8 (금)
[특별기고] 누구를 위한 의료영리화인가
상태바
[특별기고] 누구를 위한 의료영리화인가
  • 조영탁 법제이사
  • 승인 2014.12.10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영탁(서울시치과의사회) 법제이사

 


의료영리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보에 거리낌이 없다.

지난 9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더니, 11월에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제정소위에 상정했다.

또한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해외병원 개설 시 외국의 의사, 치과의사 면허 소지자의 비율 10% 기준을 삭제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절차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지난달 21일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정부는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더라도 수익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료법인의 비영리성에 반하지 않으며, 또한 영리자회사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의료법인으로 재투자해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한다면 영리추구 금지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투자자들이 주식 배당 등으로 이윤을 환수하고 남은 돈을 의료법인에 재투자한다는 단서를 기망한 것이다. 영리자회사가 수익을 전액 자기 사업에 재투자해버리면 의료법인에 돌아가는 배당금은 발생하지 않는다. 외부 투자자들이 병원에 투자해서 발생한 수익을 밖으로 배당해가는 것이 바로 영리병원의 특징이므로, 영리 자회사는 외부 투자자와 병원의 중간 매개고리가 된다.

영리 자회사의 허용은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의료법 33 8항, 1인 1개소법과도 상충한다. 일부 대형 개인병원들은 의료법인이 갖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소유 및 상속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는 개인병원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영리자회사를 통한 병원의 실질적 소유와 상속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의료법인으로 전환하는 개인병원들이 생길 것이다. 대형 개인병원들이 법인을 만들고 자회사를 설립해 의료기관을 임대하게 되면, 굳이 바지원장을 내세우고 이면 계약을 할 필요 없이 합법적으로 많은 동네병의원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힘들게 만들고 힘들게 지켜온 1인1개소법이 순식간에 무력화 되는 것이다.

정부는 영리자회사를 허용하더라도, 병원은 현행대로 건강보험이 당연 적용돼 건강보험 수가로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의료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한다. 또한 자법인는 진료 외의 부대사업 중 일부를 수행하는 것으로 영리화와 무관하다고 한다.

의료 영역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정보가 비대칭적이어서 얼마든지 환자의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2005년 “의사의 손 대신 로봇이 환자의 뱃속에 들어가 수술 부위를 절제·봉합하는 등의 시술을 하는” ‘다빈치 로봇 수술’이 도입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도입한 뒤 3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를 대형 병원들이 앞 다퉈 사들였고,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다빈치 로봇 수술 기기를 갖춘 나라가 됐다.

병원은 고가 기기의 원가를 회수하기 위해 일반 수술보다 6~10배나 비싼 로봇 수술로 환자들을 유인했다. 2011년 6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로봇 수술이 장기 생존율이나 재발률, 합병증 발생률 등에서 일반술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병원은 이미 막대한 수익을 올린 뒤였다.

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써야 할 돈이 증가하게 되면, 건강보험이 운영되는데 심각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것이고, 공공의료 보장성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것이다. 의료보장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지면 당연지정제가 지켜져도 건강보험이 유명무실해진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국민들이 더 건강해지는지에 대해 타일러 코언(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영리병원이 운용되고 있는 미국의 예를 든다. 미국인의 1인당 보건의료비는 6931달러로 일본인(2580달러)의 3배, 칠레인(772달러)의 10배에 이르지만,  미국인의 수명은 77.9살로 일본인(82.6살)이나 칠레인(78.6살)보다 짧다. 미국은 보건의료에 더 많은 돈을 썼지만 국민을 더 건강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묻는다. 누구를 위한 의료영리화인가? 치과계는 수년 동안 피라미드형 불법네트워크치과와 불법 사무장치과와의 전쟁을 겪으며,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때 불어 닥칠 수 있는 폐해를 몸소 겪어왔다.

환자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품’이 되면 비의료인의 불법진료,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저가 재료 사용, 환자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시술 등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 것을 경험해왔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동네치과의사로서 내가 담당한 환자들에게만 관심을 두지 않고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것은 의료에 무한 돈벌이를 허용한다면 결국 국민건강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