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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연말모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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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연말모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4.11.2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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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하나만 먹어도 신선의 도를 깨닫고 불로장생한다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모조리 다 따먹어 천계의 연회를 망쳐놓는다.

본디 수명인 342살도 그리 짧은 것이 아니건만 불사에 대한 강박은 이윽고 그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 옥황상제는 이 손오공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자 석가여래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석가여래는 손오공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는지 내기를 제안한다.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면 단번에 십만팔천리를 날 수 있음을 자신하며 F-22보다 수십 배는 빠르게 구름을 타고 쉼 없이 날아갔다.

이윽고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살색기둥 5개를 발견하고는 나 여기 다녀가노라고 붓글씨를 쓰고 그 옆에 오줌도 싸고 돌아왔지만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 그 모든 게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부처님 손바닥. 초현실적인 도술이 난무하는 서유기 특성상 석가여래의 대단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불교적으로 본다면 그 영원한 테마, ‘번뇌’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손오공이 아무리 지구 끝까지 도망쳐봐야, 손오공의 마음 속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번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번뇌가 만들어낸 상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좁은 자신의 마음에 갇혀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개원 초기에는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치과 고민에 밤잠을 설쳤다. 몇 년 지나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가족여행을 떠난 동남아의 한 리조트에서 맛있다고 유명한 망고주스를 빨면서도 치과를 걱정하고 이런저런 치과의사 모임들의 단체 카톡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실 그 순간에 꼭 하지 않았어도 되는 고민이고 카톡이었다.

그러다보니 가끔 답답할 때 훌쩍 떠나고 싶다가도 이런 식이라면 어디를 가봐야 다를까 싶은 회의감마저 든다. 호주의 사막 한가운데나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에 있다한들 결국 좁은 원장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꼴이다.

진료하는 그 순간의 몰입이나 치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은 아름답다. 다만 스스로 내려놓지를 못한다면 그것은 그 순간 번뇌가 된다.

하물며 스스로 내려놓으려 애쓰더라도 주변에서 자꾸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번뇌는 벗어나기 힘든 고통이 된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동문 모임, 반 모임 같은 치의들 모임에서 오늘은 골치 아픈 치과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고 선언해도 그 순간뿐이고 잠깐만 방심하면 어느새 치과 이야기로 돌아와 있다.

늘 그렇다. 근처 새로 들어오는 덤핑 치과 이야기라던가 어느 동네의 대박난 누군가의 이야기, 졸업하는 후배가 면접 본 이상한 치과 이야기 등등. 한창 치과 이야기를 하고 나서 뒤늦게 이건 아니다 싶어 기껏 벗어나봐야 이번에는 올해 수능과 시험 성적들로 이어지는 자식들 공부 이야기다.

인간사 번뇌에는 끝이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듣는 이에게 무의식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한다. 번뇌를 벗어나려는 강박 자체가 또 다른 번뇌가 된다.

에라이. 이쯤되면 번뇌가 파지티브 피드백으로 상승 싸이클을 타기 시작한다. 사실 그 이야기들이 무슨 죄인가. 누군가의 자랑이든 누군가의 고민이든 충분히 나올법한 이야기이고 공동의 화제거리를 찾기 위한 순수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에서 번뇌로 이어지는 내 자신이 문제다. 그래서 즉답즉설을 하는 법륜스님은 모든 것은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했다.

좀 더 폼나게 베르세르크의 가츠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라고도 했다.

이제 곧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모임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핸드폰뿐만이 아니다. 내 안의 번뇌도 내려놓자.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뻔한 이야기들 참고 들어주는 와중에도 반갑고 좋은 인연은 있기 마련이다.

나아가 참신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나쯤 센스있게 준비한다면 그만큼 그 테이블에서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구세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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