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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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차현인 원장
  • 승인 2014.11.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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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인(여의도 백상치과) 원장

 

하도 오래 전에 구입한 인쇄본 그림이라서 화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제목은 ‘빠리의 카페(Cafe De Paris)’. 테두리 표기에는 물론 실제로 그림에 나오는 모퉁이 건물 벽면에도 그렇게 새겨져 있다.

인쇄 장소는 퀘벡이라고 하니 캐나다에서 제작된 것이다.

내가 워낙 과문한 탓에 유명하지 않은 화가의 것은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데, 이 그림은 치과 대기실 한쪽 벽면에 와이드칼라로 제작하기 위해 확보한 것으로 기억나고, 내가 아는 한, ‘캐나다 화가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화가가 없는데…’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무슨 수를 쓰든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 알아내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을 뒤져서 카페 드 파리를 쳐보니 고흐의 명작이 나오고, 유럽의 음식점 홈페이지가 엉뚱하게 나오고….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봐도 매한가지!

도대체 이 편안함을 주는, 어찌 보면 무명화가의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과연 누구 작품일까?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분위기를 ‘빈티지 룩(Vintage Look)’이라고 한다나….

예술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함량이 부족하고 오히려 고밀도의 진부함이 스며있는 듯하다. 대체 누구일까?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더욱 기괴하다. 길거리에도 건물 안에도 사람이라고는 털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동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야외 식탁 위에 술병이며, 와인 잔이며, 양념 묻은 접시며, 물컵이며, 분명 방금 전에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을 것 같은데 다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가게 앞을 지나가야할 사람, 멀리서 걸어오고 걸어 가야할 행인들이 단 한 명도 없다.

푸른 나무 사이로 분수대도 왕성하게 물을 뿜고 있는 대낮에 모든 움직이는 존재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다들 어디로, 왜 숨은 것일까!

이것이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술병을 기울이고, 되지도 않는 농담을 주고 받아야할 그 모든 존재의 부재,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형형색색의 무음(無音)들…. 평온한 햇살의 웃음조차도 멈추어버린….

겹창문은 열려서 바깥바람을 부르고 누군가 정성껏 가꾸었는지 적당히 방치하였는지 모를 작은 화분의 식물들이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으로 조화롭게 자라고 있다.

누가 불렀기에 아니 누가 쫓았기에 모두들 화가의 시야를 완벽히 벗어난 것일까. 그 이유를 물을 만한 어느 누군가도 찾을 수 없다.

다시 돌아오라고 목 쉰 하소연을 해도 부질없다.

그 잘난 ‘나’마저도 ‘진부한(Vintage)’ 나를 두고 사라진 길모퉁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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