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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칼럼] 격물치지(格物致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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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칼럼] 격물치지(格物致知)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4.10.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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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교수

 


얼마 전 어느 대학을 방문하던 중 복도에 格物致知(격물치지)라는 액자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뜻이 막연히 다산의 교육철학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한 마음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더니, 대학의 8조목 즉,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조선말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사대부들이 맨날 책상머리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만 찾아서는 국민생활에 도움을 줄 수가 없다고 생각해 공상 속에서의 학문이 아닌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해야 한다는 소위 實學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는 8조목 중에서도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治知·誠意·正心)을 수기와 목민의 교육방법으로 보았다.

그 중 격물의 格은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이른다는 것인데, 멀리 있으면 잘 알 수 없던 사람의 됨됨이가 가까이 대해 보면 잘 드러난다는 의미의 인격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격(格)은 가까이 마주 대한다는 뜻을 가진다.

물(物)은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일컬으며 추상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치지(致知)는 아는 것의 극치, 즉 대충 아는 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정확하고 자세히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격물치지는 사물을 놓고 최선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당시 文을 物 보다는 우위에 두는 전통이 있던 사농공상의 조선시대 사회에서 사대부의 대학자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다산은 이후 천주교 사화에 연루돼 전라도 강진 땅에 유배를 가 있는 동안 목민심서라는 공직자들을 위한 매뉴얼을 저술하는데, 그의 형 되는 정약전도 흑산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자산어보(玆山魚譜)>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생태서를 저술해 어부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했으니 진정한 실학자 집안이라 하겠다.

필자는 20여년 전 부터 진료실에서 현미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이 격물치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현미경을 통해 보는 상은 눈으로만 보았을 때 하고 비교했을 때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당연히 잘 보이는 만큼 치료의 질도 높아질 것이고 치료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질 것이다.

다산이 지금의 이 모습을 본다면 격미치지(格微致知)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현미경을 쓰느냐 아니냐 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현미경을 보는 마음으로 환자의 고통과 불편함을 보느냐에 있다.

명(明)나라의 왕수인(王守仁)도 격물치지를 心卽理(마음이 곧 이치라는) 체계 안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격물치지는 다름아닌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을 환자의 마음에 격하게 하는 것 그 이상 환자에게 신뢰를 주고 감동을 주는 것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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