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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위대한 전직(轉職)이 낳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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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 위대한 전직(轉職)이 낳은 기적
  • 차현인 원장
  • 승인 2014.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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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인(여의도백상치과) 원장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인정하는 걸작들, 예를 들어 다비드, 피에타 등을 탄생시킨 명망 있는 조각가였다. 특히 자신이 즐겨 쓰는 대리석에 관해서라면 그 딱딱한 원석에 혼을 불어넣어 아름다운 육체로 일으켜 세울 정도로 정통한 대가였다.

그런 그가 시스티나 성당의 역사적인 천장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당시 ‘아테네 학당’ 벽화로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마저도 그의 천장화 앞에서 숙연하게 경의를 표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비전문가에게 맡겨진 무모한 성당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당시의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추진됐다는 사실도 꽤나 흥미롭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조각가에게 그 힘겨운 그림 작업을 맡기다니!
 

 

조각에서 회화로 주전공을 바꾼 ‘위대한 예술가’하면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고갱’이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고갱전에서 마치 보너스처럼 주어진 볼거리가 그의 초기 조소(彫塑) 작품이었고, 나에게는 고갱 회화의 화풍(畵風)을 이해하는 데에 그가 전직(前職) 조각가라는 점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입체미술에 정통했던 미켈란젤로가 형상화한 ‘천지창조’에서부터 ‘노아의 홍수’,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그가 기존 회화의 전통과 관행을 계승 발전시켰다기보다는 당대의 정치와 종교, 문화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자신만의 발상과 영감에 힘입어 직설적으로 시각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벽화 화가로는 자타가 보기에 깜냥도 안 되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스승으로 삼은 것은, 추측하건대 전대의 벽화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지금껏 육중한 대리석과 맞닥뜨려온 고된 작업들이었을 것이다.

한때 조각에 열정을 불태웠던 고갱이 형상화한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든가 ‘타히티의 여인들’ 등의 유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고갱이 자기가 속한 당대의 미술 사조에서 받은 영향보다는 밑바닥 선원 생활과 원시 체험에서 얻은 문명 비판적인 세계관에서 받은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평면적인 그림을 그려나갈 때 자신의 과거의 입체적인 작업 방식에서 상당한 암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두 예술가의 평면 작품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무기물에 영혼을 불어넣어 체온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유기체로 느껴지게 할만큼의 역동성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도 교황 율리우스 2세와 같은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훌륭한 작품이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작가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고, 위대한 학설이 반드시 참고문헌이 많은 교수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며, 탁월한 정책이 반드시 계급 높은 관료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들은 기존의 것들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세상(世上)이라는 거대한 학교에서 과거의 것만으로 미래를 재는 잣대로 삼으려 한다면 진정한 ‘천재’의 탄생은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이 지시한 벽화 내용을 깡그리 무시하고 혼자만의 방황과 고민 끝에 전혀 새로운 구상을 들고 교황을 찾아왔을 때, 이를 호기심 있게 살펴본 교황이 옆의 참모에게 던진 한 마디가 인상적이다.
“나는 천장화를 만들려 하는데, 그는 기적을 만들려 하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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