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모 원장의 마음의 창] 세 친구
상태바
[김관모 원장의 마음의 창] 세 친구
  • 김관모 원장
  • 승인 2021.09.3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고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 당시에 학교에서 고전 책을 팔았던가 무료로 주었던가 생각이 불확실하지만 학교에서 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이 중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생각이 나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 하고자 한다.

청운의 꿈을 품은 세 명의 친구가 한 집에서 기거를 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서로의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를 하는데 식사를 해결하는 문제가 생겼다. 

순번을 정해 순서대로 하루씩 밥상을 차리기로 하였다. 

그 당시는 서로가 잘 살지 못하던 시절이라 풍족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항상 배를 주리며 공부하는 처지였다.

첫 번째 친구가 밥상을 차리는 경우 이 친구는 밥그릇에 밥을 항상 똑 같이 담아서 상을 차렸다. 서로 배가 곯아도 같이 곯고 배가 불러도 같이 배부르게 먹자는 생각으로 공평하게 밥을 담은 것이다.

두 번째 친구는 자기의 밥그릇에 밥을 담을 때는 꼭꼭 눌러서 밥을 담고 친구들의 밥그릇에는 슬렁슬렁 담아서 부피를 비슷하게 만들어 상을 차렸다.

세 번째 친구는 밥을 담을 때 자기의 밥은 슬렁슬렁 담고 친구들의 밥은 꼭꼭 눌러서 담아 상을 차렸다.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배부르게 밥을 먹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배려였다.

이렇게 동문수학을 한 친구들이 학업을 마치고 30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 밥을 공평하게 담은 첫 번째 친구가 과거에 같이 모여서 공부를 한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찾아 나서게 된다. 

두 번째 친구는 예상대로 감옥에서 만나게 되었다. 자기만 생각했던 욕심 많은 친구는 도둑이 됐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뒤늦게 후회를 하지만 젊어서부터 생긴 습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범죄자로 죄 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다시 길을 나선 친구는 세 번째 친구를 찾아 가게 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이타심이 강한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책을 보면서 그의 운명을 자선사업가 또는 종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첫 번째 친구는 도를 닦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의 이치를 살피고 깨달음을 얻으며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 세 번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친구는 고을의 수령이 되어 있었다.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돌고 열심히 일하며 서로 돕는 살기 좋은 고을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이상이 내가 기억하는 책의 내용이다. 내용이 간단하고 교훈을 주려는 핵심도 명확한 짧은 글인데 아직도 선명하게 결론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선거철이 다가오면 많은 국민이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어느 분을 뽑아야 나라가 잘 될 것인지 마음속의 기준이 모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을 뽑는 것은 쉽지가 않다. 

첫째 정보의 제한성이다. 모든 후보가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고 좋은 면만 부각시키니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 만 보인다.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대중매체를 보고 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만약 대중매체가 편견 없이 그들을 보도하거나 심층 분석을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정보의 정확성이다. 우리 언론 매체가 보도의 정확성보다는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선택적 인물 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자기회사에 협조를 잘하거나 이익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인물인 것처럼 포장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포장된 모습만 본 사람이라면 판단이 흐려 질 수 있다.

스스로 관직에 나가서는 안 되는 사람임을 자각하고 물러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후보가 없다고 본다면 세 번째 친구와 같은 사람을 뽑기 위해 우리 국민이 깨어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