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의무'만 있고 '기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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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의무'만 있고 '기준'은 없다
  • 구교윤 기자
  • 승인 2020.09.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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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설명의무 위반 분쟁 많지만 판단기준 모호
진료과별 특수성 고려한 표준 동의서 마련 시급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감정된 설명의무 분쟁은 총 2102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치과에서 일어난 분쟁은 233건으로 정형외과(546건), 신경외과(308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특히 233건 중 치과의사의 설명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한 사건은 84건으로 비율로 따지면 36.0%에 달했다. 이는 정형외과(27.4%), 외과(26.7%), 내과(22.2%), 신경외과(21.7%) 등 주요 진료과목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의료중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치과의료 분쟁 398건 중 의료행위가 적절했다고 판단한 사건은 262건으로 비율로 환산하면 67.4%에 이른다. 이는 정형외과(62.0%), 신경외과(58.0%), 산부인과(53.1%), 내과(51.3%), 외과(41.1%) 등 주요 6개 진료과목 중 가장 높은 비중이다. 치과에서 일어나는 분쟁 상당수가 의료과실이 아닌 설명의무 위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의료중재원 관계자는 “단순히 동의서를 작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수술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명의무는 검사, 진단, 치료, 사후처치 등 진료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지만 그중에서도 침습적 의료행위를 할 때 강하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개원의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많은 의료분쟁 전문가가 환자에게 쉬운 언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환자가 설명을 이해했다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둘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설명을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A 원장은 “쌍팔년도 시대처럼 환자의 선택권을 무시한 채 설명하는 치과의사는 없다”면서 “구체적인 기준 없이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제대로된 가이드라인도 없는데 제3자가 개인 간 계약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라고 토로했다.

경기도 B 원장은 “실제 환자가 마음먹고 분쟁을 제기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상대적으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의원급에서는 고충이 더 크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모호한 동의서가 되례 분쟁을 키울 수 있다. 진료과별 특수성을 고려한 표준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료중재원은 마땅한 기준을 내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진료과목이 방대한데다 같은 과라 해도 진료 환경이 모두 다르다”면서 “치과에 특화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치협 차원에서 표준 동의서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15년 의원급 의료기관용 수술(마취)동의서 표준권고안을 마련해 환자의 권리보호와 의사의 자율성을 지키는데 힘 쓰고 있다.

치협에서도 지난 2017년 전자기기를 이용해 상담 내용을 녹취하고 동의서를 촬영해 외부기관의 클라우드에 보관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안전성과 법적 효력 문제에 부딪혀 잠정 중단됐다. 치협 관계자는 “현재 치협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동의서가 있으며, 각 학회에서도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회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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