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대한치과의사협회 100주년이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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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치과의사협회 100주년이 궁금해?
  • 구교윤 기자
  • 승인 2020.09.03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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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이상훈, 이하 치협)가 오는 2021년 10월 2일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본격적인 드라이브에 나섰다. 치협은 지난 7월 21일 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TF팀을 구성하고 행사 시기와 규모, 형식 등 세부 추진 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치협 100주년 기원에 대해 재논의를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의 쟁점은 무엇일까. 덴탈아리랑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우리나라 최초 치과의사 함석태

오늘 점심 뭐 먹지(오점뭐): 치협이 창립 10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시조를 다시 정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요. 무슨 일이죠? 

어깨가 쑤신다(쑤신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나라 행정권이 일본 통감부로 넘어가면서 일본인 치과의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돼. 이때 한국주차군 사령부 촉탁 치과의사인 나라자끼 도오요오라는 자가 오는데 나라자끼는 1909년 경성치과의사회를 설립한 인물이야. 

경성치과의사회 회원들은 주로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만났는데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나라자끼는 1921년 10월 2일 중앙집권적 형태를 갖춘 조선치과의사회를 새롭게 세워. 오늘날 치협의 모태가 이 조선치과의사회야. 문제는 조선치과의사회의 주체가 모두 일본인이라는 거지. 논란의 쟁점은 일본인 치과의사가 주체인 치과의사회를 우리 시조로 볼 수 있냐는 거야.

오점뭐: 당시 한국인 치과의사도 있었을텐데 조선치과의사회에서 활동하지 않았나요?

쑤신다: 조선치과의사회 회원명부가 발견된 건 없어서 한국인이 회원으로 활동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한국인도 회에서 꾸준히 활동했다는 데 힘이 실려. 그래서 일본인이 주체일지라도 치협의 모태로 봐도 무방하다는 입장도 만만찮아.

코로나 물러가라(물러가라): 명칭이 조선치과의사회였다는 점도 의의가 있어. 만약에 일본치과의사회 조선지부가 따로 있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잖아. 그런데 한국인은 회가 설립되고 9년 뒤인 1930년부터 활동이 가능했고, 초대 회장부터 24년 내내 줄곧 일본인이 회장을 맡았으니 찜찜한 건 사실이야. 

경성치과의학교 전경

오점뭐: 그럼 치협 초대 회장이 나라자끼 도오요오라는 건가요?

쑤신다: 근원을 따라가면 그렇지. 그런데 현재 치협은 초대 회장을 안종서로 보고 있어. 설립날과 초대회장이 일치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야. 재미있는 건 조선치과의사회는 광복 이전에 소멸됐다는 거야.

오점뭐: 그래서 치협 기원을 언제로 보자는 건가요?

물러가라: 대안으로 제시되는 건 두 가지야. 먼저 1925년 4월 15일 설립된 한성치과의사회가 있어. 한성치과의사회는 조선치과의사회보다 4년 늦게 탄생했지만 한국인 치과의사로만 구성된 단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창립 멤버로는 한국인 최초 치과의사인 함석태를 비롯해 안종서, 김용진, 최영식, 박준영, 조동흠, 김영권 등이 있지. 두 번째는 해방 직후 1945년 12월 9일 세워진 조선치과의사회야. 조선치과의사회는 한성치과의사회를 계승하며 발족했는데 현재 치협의 전신이기도 해.

쑤신다: 한성치과의사회가 한국인으로 구성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모태로 삼기에는 창립일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규모는 어느정도였는지 남아있는 기록이 너무 부족해. 1945년 조선치과의사회를 모태로 보면 소위 안전빵인데. 역사가 절반이나 줄어드는 게 걸리는 거지. 역사가 길면 어쨌든 좋잖아.

오점뭐: 한국인 치과의사에 대한 대우는 어땠나요?

쑤신다: 치과에서 사용하는 재료 배급을 일본인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고 해. 광복 이후 한국인 치과의사들은 착취와 핍박으로 얼룩진 사회였다고 회고했어. 그런데 학회 개최, 치과기자재 배급을 위해 모두 감내하고 지냈던 거지.

경성치과의학교 실습실

물러가라: 한성치과의사회는 일본인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어.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받기도 했지. 그러다 1942년 경성치과의사회에 강제 합병되면서 모습을 감추게 돼.

당시 조선치과의사회는 각 지방에 있는 지부를 결합해 조선연합치과의사회를 결성하는데 이때 한국인에게는 평의원 자격만 주어지고 참정권과 선출권은 없었어.

오점뭐: 가슴 아픈 일이네요. 그런데 2022년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서울치대도 일본인이 세운 경성치과의학교를 모태로 보는데 문제될 게 있나요?

오늘 출근 실환가(오출실): 서울치대는 1922년 4월 1일 설립된 경성치과의사학교를 모태로 보고있지만 졸업 기수는 1947년부터 시작이야. 연세치대도 비슷하지 1915년 8월 미국 치과의사인 쉐플리가 학교를 세웠는데 그때를 시조로 보고 있어. 

기원을 정하는 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야. 단체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거지.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힘들잖아. 미국도 마찬가지야. ADA도 1859년 미국 치과의사 26명이 모여 설립했어. 그런데 ADA가 설립되기 전 이미 두개의 치과의사 단체가 있었어. 하나는 1840년 ASDS, 하나는 ADC야. 이미 두개의 단체가 존재했는데 ADA는 1859년을 시조로 보고있어.

오점뭐: 치협과 역사가 비슷한 서울시치과의사회는 어떤가요?

쑤신다: 서울지부는 일제 시대 설립된 여러 단과대학을 단일 종합대학으로 통합하는 국대안이 수용되면서 1945년 12월 22일 모습을 드러냈는데 시조는 한성치과의사회로 보고 있어.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정체성을 다지는데 나름 노력을 한 거지.

오점뭐: 대한의사협회는요?

물러가라: 의협은 1908년 한국인 의사 10여 명이 모여 만든 의사연구회를 모태로 보는데 의사연구회는 학술연구나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보다 일본인 의사단체인 계림의학회에 맞서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을 주로 했어.

오점뭐: 역사라는 건 언제나 논란이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치협에서 논의는 안 했던가요?

우리나라 최초 치과 간판 '이해박는집'

오출실: 치협 기원에 대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상향식 총회가 도입된 1981년부터야. 당시 용산구치과의사회가 서울지부 정기총회에서 ‘서울지부 창립기념일 제정의 건’을 제기했어. 

이후 서울지부와 군진지부가 치협 제30차 정기총회에서 ‘치협 창립 기념일 제정안’을 제출했는데 마땅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철회 됐어. 그러다 협회사편찬위원회에서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데 의견이 엇갈리면서 흐지부지 됐지.

쑤신다: 그때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정리되지 않고 있는 건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 인터넷에 검색해도 뒤죽박죽이잖아.

오점뭐: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대한치과의사협회 설립일 관련 의견합치사항’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는 해방 후인 1945년 12월 9일 설립되었으며, 한인 치과의사들이 1925년 4월 15일 이후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의 정신을 계승한다. 이 땅에 최초로 설립된 전국적인 치과의사단체는 1921년 10월 2일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창립한 조선치과의사회로 한인의 참여는 1930년 이후에 이루어졌고, 1944년 10월 2일 광복 이전에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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