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헌의 시와 그림] 이사도라 던컨(Angela Isadora Duncan, 1877~1927) D와 S에게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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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헌의 시와 그림] 이사도라 던컨(Angela Isadora Duncan, 1877~1927) D와 S에게 02
  • 송선헌 원장
  • 승인 2020.08.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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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사도라 던컨, 그녀 D는
 D는 구습(舊習)을 벗어나, 표현 자체의 창의성를 주장하였다.
D는 춤을, 샤넬(Chanel, 1883~1971)은 코르셋(Corset)에서 여성을 해방했다.
D는 신무용 운동에 영향을 준 ‘현대 무용의 어머니’였다.
D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빵을 요구하러 겨울궁전에 왔다가 학살당한 노동자들을 위한 춤(1905)을 추었다.
D의 1913년, 어린 두 아들을 센(Seine)강에서 잃는다.
D는 소련에서 무용학교를 세우고 싶었고, 레닌이 초청한다.
D는 러시아에서 17살 연하의 시인 예세닌을 만나 결혼(1922), 별거(1923) 후 에세닌는 톨스토이의 손녀와 결혼, 
법적으로는 D와 부부였다.
D가 예세닌을 통해 본 것은 죽은 금발의 아들이었다. 
D의 예세닌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와 같았다.  
D의 미국 순회공연은 술과 연습 부족으로 종말을 재촉했다. 
D에 대한 평은 공산주의자, 매춘부, 천박한 댄서...였다. 
D는 예세닌의 폭행, 기물 파괴, 신경쇠약, 알코올중독, 광적 쇼핑, 간질...로 힘들게 지냈다. 
D의 남편은 ‘잘 있거라, 벗이여’란 시를 남기고 서른 살에 손목을 그어 자살(1925)했다. 
D는 예세닌의 상속인으로 지명, 남편 사후 2년 뒤 니스로 이주, ‘무한하게(sans limites)’란 좌우명을 썼다.  
D의 말년은 지독한 가난, 수많은 짧은 염문, 음주로 보냈다.
1927년 니스 해변에서 자동차 뒷바퀴에 생전 예세닌이 가장 좋아했었던 스카프가 걸려 50년의 삶을 춤추듯 떠났다.
D의 마지막 말은 ‘내 사랑 보러 떠난다’였다.
D의 장례식에는 두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 놓여 있었다. 
D는 파리의 뻬흐 라쉐스 묘지(Pere Lachaise Cemetery)에 검정색 대리석으로 남아 있다.
D의 구술 자서전은 ‘My Life(1927)’다.
D의 영화는 ‘맨발의 이사도라(The Loves of Isadora, 1968)’다. 
D의 명언은 ‘나의 몸은 내 예술의 성전(聖殿)입니다’이다.

3. 나, S에게
 S는 매일 사는 춤을 춘다.
S는 꿈이 아닌 병원에서 들썩이고 싶어 한다.
S가 춤을 추는 것은 기도의 몸짓이다.
S는 사실 의학적으로 양수 속에서부터 춤을 추었다.
S도 나름 동물의 왕국 애호가로 거기서 모방춤을 배웠다.
S는 북청사자에게서도 과외를 받았고, 백초농악에서는 교미조차도 부러워했다. 
S는 鶴舞를 보고는 허리를 세워 사뿐 걷는 연습을 했다. 
S는 나비춤도, 개구리춤도, 가창오리처럼 群舞도 추었다.
S는 우주도 生과 死의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S는 특별히 오늘 밤 주인공으로 다 벗고, 죄까지 홀딱 벗고 춤판을 벌일 것이다.
S는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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