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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욱 공보의의 사랑니] 선한 영향력과 생물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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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욱 공보의의 사랑니] 선한 영향력과 생물학 강의
  • 이은욱 공보의
  • 승인 2020.08.13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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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암기만 가득한 과목이라 생각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공과대학에 입학한 후 필수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생물학은 학문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움직이고 어떤 원리로 살아있는지에 대한 회로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굉장히 재미있었기에 이후 생물 과목 몇 개를 더 수강하며 점점 더 생물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에게 생물체라는 것은 각자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무언가였다. 눈에 보이는 저곳에 가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 가고, 밥이 보이면 밥을 먹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는 등 행동과 감정을 포괄한 모든 ‘의지’는 생물학의 신비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의지’를 영혼이라 부른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 ‘의지’에 대한 의문이 있던 것은 아니다. 막연히 뇌에서 시키니깐 혹은 호르몬이 분비되니 생기는 생리현상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2학년 1학기 때 생화학을 배우던 나는 ‘의지’ 즉, 영혼의 실체에 대해 배웠다. 외부 자극이 생기면 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반응들은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생물의 의지로 해석되었다. 만약 내가 저곳으로 가고 싶다면, 뇌에서 자극을 보내 근육들을 움직이는 그 일련의 과정 말이다. 하지만 분자 단위로 공부해보니, 그 작은 곳에는 굉장히 허무할 만큼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화학 반응의 연속일 뿐이었다. 가령 수소가 있으면 당연하게 산소랑 결합하고, 오비탈을 채우기 위해 이동한 전자에 의해 분자의 전하가 마이너스가 되고, 당연히 근처에 플러스 전하를 가진 칼슘 이온이 옆에 붙게 되고 등등.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련의 화학 반응들은 연결되고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근육을 움직이고, 걸어가며, 밥을 먹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의지’가 되었다.

과정들 사이에 숨어있는 생화학 반응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움직임 하나 없이 단어 그대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들인데 그 전체를 살펴보면 생물체의 ‘의지’가 되어있었다. 도대체 여기에 영혼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방향성이 있는 것일까? 최종적인 목적의 방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 작은 반응들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너무 갑작스럽게 ‘의지’ 정체를 알게 되어서 당황한 나는 한동안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허무주의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여전히 ‘의지’와 영혼은 내 몸속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깨달은 지식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준 것 같다. 

대학교 때 만난 친구와 나는 우리의 삶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약속했다. 물론 남들에게 부끄러운 행동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건네는 일들을 소소하게 하고 있다. 그래도 살다 보면 나의 일과 의무에 지쳐 내가 생각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날들을 보내는 시기가 있다. 바로 요즘 그런 시기를 몇 개월째 보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 봉사는커녕, 국내 봉사도 모두 금지되어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허송세월하는 듯한 느낌으로 집에서만 지내고 있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외부활동도 일절 안 하고 지낸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날을 보내도 되는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할 때쯤, 대학교 때 배웠던 깨달음이 나를 구했다. 방향이 없는 것 같던 나의 하루하루가 모여 최종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의지를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하루만 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시간도 거시적으로 본다면 나의 의지와 영혼을 나타낼 것이라 굳게 생각하기에 의미 없는 하루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오늘도 내가 올바른 방향만 잡고 있다면 그 의지 속에 담긴 하루일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던 친한 후배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 보았다. 너의 오늘은 멋진 삶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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