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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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
  • 이은욱 공보의
  • 승인 2020.06.11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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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보건소 이은욱 공보의
거제시보건소 이은욱 공보의

 

저는 어릴 때부터 정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린 저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부조리함이 느껴졌던 주변 환경들과 사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아마 선생님들의 폭력이 여전하던 학창 시절을 보낸 탓이 컸던 듯합니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요.

10여 년 전 대학교 새내기였던 저에게, 당시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마이클 샌댈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수능 공부와 전공 공부에 밀려 소소하게나 찾아보던 철학 서적들을 마구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크고 멋진 이론들과 지식에 비해 저의 현실은 매일 똑같은 시골 생활뿐이었습니다. 

당장 써먹을 곳도 없는 정의론은, 한 때 불타올랐던 학구열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습니다.시간은 흘러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였습니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의료진의 손길이 굉장히 부족하게 되었고, 공중보건의사인 저는 의료진 업무지원을 자원하여 이 시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마침 저의 도움이 필요하던 곳은 경상남도청이었고, 저는 6주간 역학조사관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저의 역할은 확진자들을 관리하며 접촉자를 분류하고, 위험 시설들을 분류 및 폐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감염 의심이 되는 사람들을 자가격리시키며, 전반적인 코로나 업무를 감독 및 지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확진자가 생겼습니다. 확진자는 모텔, 미용실 등을 다녀갔습니다. 즉시 해당 시설들에 2주간 폐쇄를 명령하였습니다.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2주나 쉬면 생계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가게명이 전국에 공개가 될 터인데, 다시 가게 문을 연다 한들 손님 발길이 뚝 끊기지 않을까?’

구강 내에 병이 생긴다면, 빠르게 제거를 해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확산을 막고 우리 사회가 다시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개개인의 격리와 그에 따른 희생은 필수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라는 말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 접촉자 및 감염 의심 환자들의 자가격리는 그만큼 당연한 지침이었습니다.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와 본인들조차 당연히 여기는 상황임에도 그들의 희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희생을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해봤지만, 그런 방법은 없었습니다.

문득 어릴 때는 쉽게 읽고, 쉽게 익혔던 다양한 정의론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난감한 상황들도 책으로 보았을 때는 쉽게 판단하며, 많은 이론을 갖다 대며 쉽게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 눈앞에 상황이 생기니 너무나 쉬운 결정임에도 고민하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희생하는 모든 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이겨내려는 현장을 직접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의 의미를 진실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빨리 이 힘든 시기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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