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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연 원장의 생각] 어줍짢은 종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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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연 원장의 생각] 어줍짢은 종교론
  • 이효연 원장
  • 승인 2020.04.0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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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치과 이효연 교정원장

사람 사는 이야기는 항상 신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한다. 무서운 존재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고 의지하는 대상으로 신을 생각한다. 이념적일 수도 있고, 철학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일 수도 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신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신은 왜 늘 사람과 함께 있었을까? 그렇게 신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민족의 시원을 밝히는 여러 책들 속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출처: 환단고기 소도경전본훈 桓檀古記 蘇塗經典本訓)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듣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우리 민족의 이념이다. 한 번 들어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멋지고 훌륭해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말이라 금방 알아봤지만 나머지 말은 처음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짧은 한문 지식을 동원해서 해석해봤다.

‘신이 마음에 내려오니 성품이 빛나고 밝아진다. 이 성품으로 세상에 임하여 이치로 다스리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해석이야 좀 어쭙잖아 보였지만 뜻은 눈이 확 뜨일 만큼 멋있었다. 특히 ‘신이 마음에 내려오니 성품이 빛나고 밝아진다’는 말은 참 신선한 느낌이다.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얘기는 안타깝게도 아직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반만년을 넘어서는 그 먼 옛날에 이런 멋진 생각을 한 것은 다시 한 번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은 다른 데에 또 있었다. 불가에서는 예로부터 스님들이 ‘네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해 왔다. 부처는 깨달아서 밝고 환해 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니 이 말은 곧 ‘마음은 본래 밝고 환하니 그것을 깨달아라’는 뜻으로 새겨도 맞지 않을까?

마음을 깨달아서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고 해탈과 열반, 즉 묶인 곳 없는 편안한 곳에 이르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홍익인간으로 끝맺는 우리 민족의 이념을 해석하는 순간 떠오른 것이다. 하나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편안한 곳에 이르라고 했다. 더구나 그 방법으로 하나는 신을 마음에 담아 성품을 밝고 환하게 하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본래의 밝고 환한 성품을 깨달으라 했다. 장소가 다르고 시간은 몇 천 년의 차이가 나는데도 두 가르침은 마치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비슷한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문득 이와 비슷한 말이 또 다른 데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는 구절이다. 앞서 두 가르침의 영향인가, 나는 이 구절에서 ‘나’를 ‘나의 마음’으로 바꾸고, ‘아버지’를 ‘밝고 환한 세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의미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나니 위의 구절은 ‘내 마음이 곧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새겨졌다. 이렇게 바꿔 놓고 보니 예수님의 가르침도 마음을 밝혀 세상의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서 밝고 환한 세상에 이르라는 뜻이 된 것이다. 

멋대로 해석한 부분도 있지만 그 내용이 참 좋았다. 세 분 모두 본래의 밝은 마음을 알아서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이 되라고 가르친 것이다. 홍익인간으로, 자비와 보살행으로, 사랑과 헌신으로. 말씀하신 단어는 다르지만 새겨 보면 모두 같은 뜻의 말이다. 예전부터 사람을 밝고 바른 길로 이끌어 오신 분들은 신이나 성인으로 나눌 것도 없이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을 오랜 세월 너머 다른 장소에서도 변함없이 보여 주신 것이다. 

이렇게 느끼고 나니 참 재미있고 즐겁다. 개천절이면 단군님께 감사하고, 부처님 오신 날이면 부처님께 감사하고, 성탄절이면 하나님께 감사 한다니 고마워 할 분들이 많아서 좋고, 이 날들이 다 노는 날이니 더 좋다. 성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 온통 고마운 분들이고 노는 날도 늘어나니.

그러고 보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그래서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 곧 종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높은 하늘 나라에서는 단군님, 부처님, 예수님, 아마 마호메트도, 매일 아침이면 뜨끈한 목욕탕에 모여서 목욕도 하고, 맛있는 아침밥도 나눠 먹고, 환한 햇살 맞으며 산책도 하고, 형님 동생하며 사이 좋게 얘기도 나누면서 즐겁게 살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하하하 … 이렇게 얘기하다가 여러 군데서 혼나지 않을까 하면서도 가만히 혼자 하는 생각에 홀로라도 나는 즐겁기만 했다.

잠깐 하나 더. 종교는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 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겨 났다. 앞에 얘기한 분들은 이 불안함을 보듬고 달래 줬다. 그 분들이 불안함을 달래 주던 방법이 바로 마음을 환하게 밝히고 믿음을 바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아직도 참 먼 길인 것 같지만 사람들이 행복해 지려면 이 길이 유일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불안함을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해서 이용하는 놈들이 있다. 이용하는 놈이나 이용당하는 사람이나, 누구 탓이랴 하면서도 남을 이용해 먹는 놈들은 혼 좀 났으면 좋겠다. 혼나고 마음 바로 잡아서 다들 밝고 환한 마음으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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