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4:50 (목)
[이수형 원장의 오늘] 유튜브, 알고리즘, 그리고 확증편향
상태바
[이수형 원장의 오늘] 유튜브, 알고리즘, 그리고 확증편향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0.03.12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치과 이수형 원장

아들과 아이디를 공유해 사용하는 유튜브에 어느새 도티와 잠뜰, 마인크래프트 영상이 가득해졌다. 아내가 필자의 넷플릭스 프로필을 사용하고 나면, 국내 멜로 드라마와 예능들이 리스트에 띄워진다. 이게 다 검색 알고리즘 때문이다.

유튜브의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일반 개인이 모든 영상을 검토해 취향대로 고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유튜브는 유저의 취향을 반영한 리스트를 보여준다. 검색 알고리즘에서는 성별, 나이, 국적부터 세밀한 영역의 취향까지 반영되는데, 알고리즘에서 가장 중요하게 삼는 것은 과거의 시청이력이다. 특정 개인이 과거에 즐겨본 것이 게임인지, 요리인지, 정치평론인지, 아이돌인지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결과와 비슷한 카테고리의 비슷한 다른 영상을 제시한다. 

유튜브 뿐만 아니라 구글 광고, 언론사, 검색엔진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개인의 과거이력이 앞으로의 사용방향에 영향을 주도록 설계하는 것이 대세다. 왓챠나 넷플릭스 등 후발 업체들도 개인별 맞춤으로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하는가를 차별화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철저하게 ‘그 사람이 좋아했던’ 과거이력 위주인지 그것을 바탕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좋아할’ 추천리스트를 보여주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리스트업되는 영상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점이다. 어느 날은 한 주제가 흥미로워 잔뜩 시청됐지만 가끔은 다른 걸 보고 싶을 수도 있는데, 알고리즘은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다른 게 보고 싶은 에너지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습관적으로 리스트에 나오는 추천영상들을 터치하게되면 점점 좁은 세계로 우물파고 들어가듯 틀 안에 갇힐 위험이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잡지에 의하면 능동적이고 스마트한 유저층 사이에서는 이러한 확증편향의 리스크에 대해, 검색기록을 세탁하는 대응법까지 나왔다고 한다. 과거의 이력을 지우던가, 무작위의 키워드를 검색하고 임의 시청함으로써 강제로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키워드는 한계가 있다. 조금 더 다양한 느낌을 준다 정도지, 껄끄러울 정도나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깨버리는 정도에 이르기는 어렵다.

결국 과거 자신이 경험해온 견고한 틀을 깨는 놀라운 경험은 점점 힘들어진다. 개인의 취향이 더욱 공고해지고 그 결과로 대중의 확증편향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이른다. 필자 또한 유튜브와 넷플릭스 프로필을 내 취향대로 다시 깨끗하게(?) 세탁하려다가 문득 의미없음을 느꼈다. 한 아이디를 쓰는 한 다시 뒤섞이게 되는게 필연인데 굳이 피할 필요가 있을까. 집착을 내려놓으니 아이디를 가족과 공유함으로써 내 틀을 깨버리는 다양성은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초딩과 주부 취향이 섞인 것이지만.

유튜브 뿐인가 싶다. 사회생활도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다양성의 범주가 좁아진다. 편하게 치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같은 치과의사들, 그 중 좀 더 편한 동문 혹은 동네 치과의사,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성향이나 자녀의 나이가 비슷하거나 사는 곳이 가까운 사람들 등이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비슷한 이야기만 나누면서 스스로 확증편향에 빠질까봐 두렵다. 그것이 치과 술식에 대한 의견교류이든, 번아웃이 엄습한 신세한탄이든, 협회장 선거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한다리 건너 아는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자신의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와도 나누지 않으신다고 한다. 자신의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자신의 생각과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 선입견을 막기 위한 노력이 그렇게 힘들다. 허심탄회한 말로 털어놓으며 여러 감정이 풀리기도 하지만,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 알게 모르게 나를 옭아매기도 한다. 

결국 확증편향을 벗어나기란 껄끄러울 정도의 불편감을 감수하며 노력하는 지리한 고행의 길이다. 지나치게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이 그냥 평생 다이어트하는 느낌이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자기관리의 항목이 추가되는 건가 싶다. 오우 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