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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교수의  공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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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교수의  공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 박기호 교수
  • 승인 2019.12.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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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치과대학 교정학교실 박기호 교수 

필자는 인구 몇만 명 밖에 안 되는 조그만 시골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향집에는 이천 년이 지난 고인돌이 하나 있고 밤나무, 은행나무, 앵두나무, 호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고 사과나무, 감나무와 뽕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안방, 사랑방, 부엌방, 중간방, 윗방, 아래방, 갓방이 있고 우물 옆에는 두레박이 있고 잘못하면 빠질 것 같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기와집이었다.

요즘 어린이들과는 달리 예전에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웠기 때문에 필자는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름에는 마을 앞에 있는 개울에서 벌거벗고 개헤엄을 치고 다녔고 가을에는 벼를 벤 논에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겨울에는 개울에서 썰매를 타거나 눈이 쌓인 날 야산에서 눈썰매 대신 비료부대를 타고 내려왔다. 

필자는 1993년에 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경쟁도 없고 항상 평온했던 시골에서 살다가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상상 이상의 치열함에 필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사고 방식이나 행동이 완전 촌놈이다 보니 좋게 말하면 순박했고 솔직히 말하면 어리버리 했다. 입학 동기 80명 중에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스무 명 밖에 안 됐기 때문에 도시에서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말과 행동이 세련된 친구들 사이에서 한동안 아웃사이더로 지내면서 적응하기 위해 나름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필자가 입학하던 해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차 바뀌긴 했지만 그 당시 대학에는 군대 문화가 남아 있어서 선후배 위계질서가 지금보다 상당히 엄격했다. 또,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는 치과의사의 개원 환경이 나은 편이었던 것 같은데 선배들이 보기에는 치과의사 좋은 시절 다 갔는데 후배들이 불쌍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친구들이 이해 관계가 없이 서로를 대했기 때문에 동기들 사이에서 즐거운 추억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북서울 꿈의 숲으로 바뀐 드림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매년 우이동으로 즐거운 MT를 갔다.

필자는 친구들 따라 당구장에 몇 번 갔다가 친구들 따라 합창부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끔씩 연습에 늦어서 운동장을 돌거나 기합을 받기도 했지만 필자에게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었을 때 큰 도움을 줬던 친구들도 있는데 지금도 가슴에 고마운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지난 달에 압구정의 한 음식점에서 졸업 20주년 기념 모임을 가졌다. 친한 친구들끼리야 매년 서로 만나겠지만 이렇게 40명 정도가 참석해 단체로 모임을 가진 건 졸업 후 처음이었다. 필자는 본과 3학년 때 1년을 휴학해 동기들보다 1년 늦게 졸업했지만 입학 동기들과의 오랜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이 모임에 참석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나 됐다는 것을 그 동안은 느끼지 못했는데 이미 세월은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길게 흘러가 있었다. 대학 동기셨던 담임 교수님 두 분도 참석하셨는데 필자가 예과 1학년 때는 두 분 다 30대 후반의 가장 젊은 교수님이셨던 분들이 이제 정년이 일년도 안 남으신 최 고참 교수님으로 제자들 앞에 서셨다. 육십 대 중반이신데도 두 분 다 젊은 학생들과 몇 십 년을 지내셔서 그런지 연세에 비해서 훨씬 젊어 보이고 에너지가 넘치셨다. 필자도 20년 후 저런 모습으로 후배 제자들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이제 동기들도 대부분 40대 중후반으로 나이로도 그렇고 치과계에서의 위치도 그렇고 다들 중년이 돼있었다. 치과대학 교수가 열명 정도이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각 지역에서 치과를 개원한 지 십 년이 돼 다들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이 표정에서 배어 나왔다. 다들 주름도 늘고 배도 나오고 흰 머리도 늘었지만 20여 년 전의 말투와 행동이 거의 변한 것이 없어서 이 날 모임의 분위기는 대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나고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 동기들은 서로 간에 이해 관계 없이 서로 순수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20여 년 전 학창 시절의 얘기들로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20여 년 만에 파도타기도 하고 옛날에 했던 게임들도 하면서 그동안 어려워진 개원 환경, 까다로워 진 환자들, 팍팍해진 대학 교육 환경 등으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어버릴 수 있었다. 

헤어지면서 너무나 짧았던 만남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내일부터 모두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또 다시 치열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그동안은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지만 앞으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대학 친구들과 서로를 격려해 주는 모임을 더 자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리고, 졸업 30주년 기념 모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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