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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계란 껍데기와 T55는 무슨 차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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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계란 껍데기와 T55는 무슨 차이인가요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9.11.28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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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글로벌치과) 원장

지난 주말,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들과 함께 둘째 아들이 좋아하는 모닝빵을 만들기 위해 홈베이킹을 시도했다. 유튜브를 참고해 전자 저울까지 사용하며 밀가루, 설탕, 소금, 이스트를 계량해 준비했다. 계량컵의 눈금에 맞춰 우유를 따라놓고 계란을 준비하는 과정까지는 순탄했다.

혼합 과정에서 한가지 소소한 문제가 일어났는데 아들이 계란을 깨다가 껍데기가 큰 게 하나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소했던 문제는 내가 밀가루를 아무리 헤집어도 껍데기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 더 이상 소소하지 않게 돼버렸다. 

‘눈으로 못 찾겠다면, 반죽을 하면서 손의 느낌으로 찾아내겠어!’라는 자세로, 최대한 부드럽게 반죽을 해봤으나, 결국 깨알같이 산산이 부서진 껍데기들이 반죽에 뒤섞여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OMG! 먹지 못할 쓰레기가 돼버린 첫 반죽을 버리면서, 괜히 미안해하는 아들을 달래고 냉정하게 상황을 복기하고 해결책을 생각해봤다. 짧은 토의 끝에, 다른 그릇에 먼저 계란을 깨고 그걸 반죽에 붓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대안이 나와서 그대로 실행했다. 다행히 두 번째 반죽이 성공하고 두어 시간 뒤에 그럭저럭 봐줄만한 모닝빵이 나왔다. 평소 모닝빵을 좋아하던 둘째 녀석이 이건 모닝빵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입도 안 댄 것은 뭐, 어느 정도 예측범주 안에 있었던 결과값이었다. 

이제 모닝빵을 정복했으니 본격적으로 홈베이킹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프랑스 밀가루 T55를 이용한 무반죽 치아바타를 만들어보자고 아들과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밀가루에 대해서 알아보니, 국내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에 따라, 강력분, 박력분으로 나뉘는데 반해 프랑스 밀가루는 회분 함량에 따라서 T45, 55, 65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회분 함량은 밀알의 속껍질에 가까울수록 증가되기 때문에, 통밀에 가깝게 도정을 적게 할수록 수치가 올라간다. 그리고 빵의 색과 풍미, 질감까지 회분 함량에 따라서 달라진다. 

쌩초보의 홈베이킹을 향한 험난한 여정의 초입에서 배운 교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밀가루 껍질은 일부러 넣기도 하지만, 계란 껍데기는 실수로 들어가면 반죽을 망친다. 사실 엄청나게 당연한 사실인데, 당연한 이야기들일수록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깊이 알기 어렵다.

직업 특성상, 직원들을 고용해서 병원을 꾸려나가야 하는 개원의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병원의 직원들을 구성할 때, 개성이 넘쳐도 조직과 잘 융화되면서 시너지가 나는 직원이 있고, 분위기도 해치고 조직을 망쳐버리는 직원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전 회장인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인사 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채용이라고 강조한 바가 있다. 그의 저서, ‘How Google Works’에서 최고수준의 인재를 채용하는 것에 쏟는 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며, 우수한 인재는 다시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열정이 있고, 성장을 지향하고, 창의력과 통찰력이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인재를 골라내기 위한 면접을 강조했다. 그리고 빈자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채용의 질적 수준을 양보하지 않는 것을 황금률로 못 박았다. 

솔직히 구인이 어려운 일선 개원가에서는 하나같이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다만 지키기 어렵다고 해서, 무시해도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급하다고 서둘러 채용을 했는데, 불성실함이나 업무 능력의 부족으로 기존 직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당일 아침 전화로 결근을 통보하기도 하고, 수습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직원 단톡방에서 원장의 뒷담화에 앞장서기도 한다. 고년차 경력직을 뽑았는데 이건 어시스트가 아니라, 어디 이래도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옆에서 진료의 질을 끌어내리는 경우도 있다. 

새로 뽑은 직원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원장들은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보통은 그렇게 모질지도 못하고, 새로 구인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단을 주저하게 된다. 최근 필자도 구인난을 겪다가,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채용의 질적 수준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구글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진료실에서의 트러블도 겪고 마음 고생도 하고 고민이 깊어졌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빵 반죽에서 껍데기가 들어가버린 그 계란이 바로 냉장고 안의 마지막 계란이었다고 하더라도 마트를 가서 계란을 더 사와야지, 껍데기가 아그작 씹힐게 뻔한 빵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밀껍질인지 계란껍데기인지 일단 감별됐다면, 이후의 결정은 고통스럽더라도 빠르게 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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