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형 원장의 오늘] Do you see to believe or believe to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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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Do you see to believe or believe to see?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9.09.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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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치과 이수형 원장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교 1학년인 큰아들이 친가에 혼자 내려갔다. 오래간만에 보는 손주를 맞아 여러 가지 이벤트로 어울려주시던 어머니께서 하루는 본인의 상장처럼 간직하시던 내 초등학생일 때의 일기장과 상장들을 보여주셨나 보다. 아들이 돌아와서는 그림은 자기가 낫고, 글씨는 아빠가 낫다며 사뭇 구체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최근에 자기가 읽은 ‘시튼 동물기’를 초등학교 1학년인 아빠가 읽고서 일기에 썼다고 재미있어 했다. 덕분에 늑대 로보의 최후나 회색곰 와브의 일생에 대해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기억하는 시튼 동물기와 아들의 감상이 제법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5권짜리 ‘시튼 동물기’를 다시 읽어보니, 내 과거의 감상에 대한 기억이 다소 왜곡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새롭게 느낀 놀라운 점은, 약간의 삽화와 활자들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아쉬움과 시각적인 정보가 부족해 느껴지는 답답함이었다. 아무리 관찰기의 형식으로 있고 자세한 설명과 묘사가 있어도, 일종의 우화나 동화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물론 ‘시튼 동물기’ 중에는 그 당시 여러 이야기를 짜깁기 한 픽션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주인공 동물의 사진 한 장 없다보니 논픽션으로는 느끼기 위한 최소한의 팩트 체크 욕구가 도저히 충족되지 못하는 문제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최근 자연이나 동물을 다룬 다큐는 시각적으로 무척 충실하다. 드론을 띄우거나, 소형 카메라를 부착하기도 하고, 로봇을 동물로 분장시켜 스파이로 침투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생생하게 가까이서 동물들의 일상을 4K UHD로 감상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는데, 무미건조한 관찰기도 아니고 의미부여와 교훈까지 담으려 관찰자의 주관과 의견이 많이 들어간 텍스트를 보고 있으려니 이게 도저히 다큐로는 안 읽혀지는 게다. 처음에는 이게 ‘시튼 동물기’ 때문인가 했는데, 현재의 다큐들도 내레이션으로 스토리라인을 집어넣고 교훈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곱씹어볼수록 이건 시각정보에 익숙해져 당연시하고, 그게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나의 문제다. 현대인의 공통적인 속성이기도 하고 직업병이기도 하다.

실제 임상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다. 자신의 구강 내 문제 상황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는 해부학적인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은 시각적 자료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갖 시각 정보가 범람하는 현시대에 시각적 자료의 요구는 추가적인 옵션에서 당연한 디폴트로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찍어서 보여주면 좋은 게 아니라, 안 찍으면 아무리 의사의 설명을 들어도 팩트 체크의 욕구가 충족이 안 된다. 이걸 환자에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나부터도 환자에게 치료계획이나 치료 결과를 확인하고 설명할 때 시각적 자료가 없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Sinus 수술을 했으면, 그저 적당히 각도를 맞춰 그럴듯하게 나온 스탠다드 엑스레이로는 만족이 안 되고 Ostium까지 나오는 상악동 CT를 찍어야 안심이 된다. 전치부 보철을 세팅하고서 환자가 만족한다고 말해도, 듀얼 플래쉬가 터지는 DSLR로 환자 입을 벌리고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환자의 번거로움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시각적 확인의 욕구에 의한 강박적인 기록은 그 순기능이 있다. 마치 4K UHD TV가 시작되면서 여배우들의 피부 트러블까지 숨길 수가 없게 된 것처럼, 임상 결과를 얼버무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케이스를 대면하며 심도 있는 피드백이 가능해지는데, 보통은 기본적인 것부터 고칠게 나오기 마련이다. 고화질 대형 TV에서 여배우의 액세서리보다 피부 톤이 먼저 보이는 것처럼. 이를테면 크라운 프렙에서 패쓰가 나오면 끝이 아니라, 더 예쁜 Shoulder 마진과 상처 없는 잇몸을 달성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가 된다. 모니터상에 봉합사 3-0, 4-0가 두꺼워 보이기 시작하고, 5-0, 6-0로 일차봉합을 예쁘게 달성하려고 절개부터 다시 공부하게 된다. 

치과계에서 하나의 트렌드로서 시각적 기록이 중요해졌다 싶은 것은, 전자서명으로 차별화하는 시절이 있었던 전자차트 프로그램들이 요즘은 뷰어 및 사진 정리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좋아지는 화질만큼, 자주 찍는 횟수만큼 차지하는 용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백업을 서비스해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10년 전 DSLR이 막 보급되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앞으로 10년 뒤가 어떻게 될지 두렵고도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환자는 좀 더 좋아질 테고, 치과의사는 좀 더 노력해야할 테지. 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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