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칼럼] 영리한 프로
상태바
[이승종 교수의 칼럼] 영리한 프로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9.08.22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이승종 명예교수

프로(Proism)와 프로정신(Profes-sionalism)은 비슷한 것 같지만, 뉘앙스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프로정신은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윤리와 통상적인 사회 규범에 맞게 수행하는 고도의 덕목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집단을 Professional이라 부른다. 반대로 기술은 뛰어나지만 도덕과는 거리가 먼 전문가라면 아무리 전문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프로에 머무를 뿐 프로정신을 가진 사람, 곧 Professional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마치 ‘타짜’로 불리는 도박기술자가 프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존경 받는 Professional이 될 수는 없고 선거의 승리만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이 정치프로라고 불릴 수는 있어도 존경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프로’라는 말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있다. 

얼마 전 축구선수 호날두의 결장이 전 국민의 비난을 받을 때, 영국의 가수 Anne Marie가 무료공연을 펼쳐 팬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었다. 예정됐던 Anne Marie의 공연이 하루 전에 기상악화로 취소되자 Anne Marie가 자신의 비용으로 인천에 있는 호텔로비를 빌려서 팬들을 위한 서비스공연을 연 것이다. 팬들은 호날두의 비열한 행동과 대비해서 Anne Marie의 프로정신을 찬양했는데, 공연취소를 놓고 가수 측은 주최 측에서 먼저 취소결정을 내렸다고 하고 주최 측은 가수 측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먼저 취소를 결정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만약 주최 측에서 먼저 취소를 했는데, 팬들과의 만남을 이루지 못한 Anne Marie가 안타까운 마음에서 무료공연을 준비한 거라면 그것은 진실한 의미에서의 프로정신이다. 그런데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면 엄청난 손해가 따르는 결정을 과연 주최 측이 먼저 했었을까’라는 약간의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가수 측의 결정에 의해서 공연이 취소됐다고 공표가 되면 팬들의 비난을 받을게 뻔하니까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팬서비스를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삐딱한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프로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프로정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좋은 투자가 된 것이다. 호날두의 경우도 프로정신의 견지에서는 몸이 아파도 팬들을 위해 출장을 하는 것이 맞지만, 돈을 따라 움직이는 프로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깟 한국 팬들에게 조금 야단을 맞더라도 앞으로 돈이 될 큰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Anne Marie는 영리한 프로가 됐고 호날두는 조금의 이익을 위해 명성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프로가 됐다.

얼마 전 치과계 내의 과잉진료나 먹튀치과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많은 치과계 인사들이 이러한 비도덕적 행태에 안타까워하고 부도덕한 진료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율징계 등 강력한 징벌권을 행사하자고 말한다. 당연히 도를 지나친 비윤리적 의료행위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법적으로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에서도 자율징계권의 시범사업으로 자발적인 윤리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 보도들로 인해 이미 실추된 치과의사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얼마 전 발표된 의료인 신뢰도에서 치과의사가 의사, 간호사, 약사에 이어 매우 낮은 신뢰도를 보인 것도 이러한 부정적인 보도의 결과가 아닐까 추측된다. 이미 치과의사로서 좋은 시절을 보낸 기성치과인들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을지 몰라도, 새로이 치과의사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치과의사들에게는 마치 사람이 빵 만으로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긍정적인 사회적 이미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회의 사랑과 존경이 없다면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어온 그들에게 치과의사로서의 생활이 얼마나 좌절되겠는가. 사회의 사랑과 존경,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일구어야 할 치과계의 비전이다. 

그러면 어떻게? 답은 간단하다. 국민들이 치과의사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국민들이 치과의사들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의 자연치아를 소중히 생각해주고 끝까지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의사가 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주고, 정치인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사실 그것이 이 사회에 치과의사라는 직업군이 존재하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환자들은 인터넷 등의 정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치료를 의사가 하도록 권할 때, 말은 안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반대로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사를 찾아갔는데, 아직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신중한 권유를 받으면 금방 그 의사를 신뢰하게 된다. 어떤 의사가 되겠는가. 당장의 작은 이익을 위해 신뢰를 버리는 호날두와 같은 어리석은 의사가 되겠는가, 신뢰라는 미래의 큰 이익을 위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는 Anne Marie와 같은 영리한 의사가 되겠는가. 치과의사의 존경과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협회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환자에게 감동으로 전해지는 개개 치과의사의 프로정신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