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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임플란트와 병원인테리어정가이버와 떠나는 병원인테리어 여행 ⑦
치과의사 출신
병원인테리어 전문기업
정종호 대표

인테리어를 하는데 웬 임플란트 이야기일까? 치과 인테리어는 임플란트와 상관성도 많고 유사한 점도 참 많기 때문이다.

15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임플란트가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라 열심히만 하면 임플란트 치과로는 참 좋은 시절이었다. 주위에 임플란트를 심는 치과도 그리 많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국산 제품보다는 외제를 많이 심고 비용도 300만 원 정도로 많이 받았다. 수술 전날에는 술도 안 먹고 집에도 일찍 들어가고, 당일에는 오전에 수술을 하고 나면 그날 오후는 쉬는 경우도 가끔 있어 직원들도 좋아했다. 

임플란트를 하는 병원과 안 하는 병원으로 나뉘다 보니 임플란트는 치과인테리어의 고급화를 재촉하는 촉매제와 같았다. 대형이나 연륜이 좀 있던 원장님들은 임플란트 세미나를 듣고 그동안에는 없었던 수술실을 만든다는 이유로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고급화 전략을 취했고, 인테리어업체는 임플란트 몇 개만 심으면 그 돈이 빠진다며 마구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다 보니 의과나 룸싸롱 등에 집중돼 있던 실력 있는 업체들이 치과에 올인하게 되고, 또 치과 인테리어를 잘 하는 업체는 다시 성형외과에서 부름을 받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병원인테리어 가격은 2008년 정도까지 계속 올라갔다.

치과를 표방하던 인테리어업체의 분포를 보면 임플란트가 본격 보급되던 2005~2008년쯤 크게 늘어난다. 실장으로 근무하던 많은 현장소장들이 자신들만 엄청 고생하고 실제로는 업체 사장들이 떼돈을 번다고 생각해 업체를 나와서 병원전문 인테리어회사를 차리고, 실력 있는 인부를 데려가기 위해 마구 스카우트를 하다 보니 덩달아 인부들의 일당도 오르기 시작했다. 치과가 많아지고 주위에 대형치과가 생기면 직원 급여도 오르는 현상과 유사하다.

협력업체를 모집하기 위해 인테리어업체들을 미팅하다 보면 월드컵 이후인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설립된 인테리어회사가 제일 많고, 이때 생긴 업체들이 지금도 가장 왕성하게 공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함께 찾아 온 불황에 임플란트의 대중화로 인테리어 시장은 그대로인데 업체까지 많아지다 보니 영세한 업체는 살아남기 위해 덤핑을 시작했다.
물론 예전만 못한 치과전망에 원장님들도 돈을 쓰는데 주저하게 되고 치과 인테리어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게 되자 한때 돈을 흥청망청 쓰던 인테리어업체 사장들이 세금을 못 내 잠수를 타는 일도 잦아지게 됐다.

인테리어 단가가 높을 때에는 A/S도 잘하고 공사도 깔끔하게 끝내던 업체가 많았던 반면, 단가가 떨어지자 일부 업체는 계약할 때만 그럴 듯한 포트폴리오로 원장님들을 현혹한 다음 공사도 대충하고 심지어 잔금까지 받고도 별도공사비를 안주면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아 이때부터 인테리어업자는 ‘양아치’라는 말이 유행했다. 임플란트가 생긴 후 먹튀 치과들의 폐업이 잦아지자 A/S를 못 받은 환자들의 입에서 ‘치과의사는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경우일 것이다.

정종호 대표  arirang@dentalari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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