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神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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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神을 만나다
  • 편집부
  • 승인 2011.12.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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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의 산증인 Makoto Yamamoto 인터뷰

오팔파우더와 컷백으로 전 세계 치과기공계의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세라믹의 산증인 Makoto Yamamoto선생을ZERO창간 1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인터뷰로 만났다.
“세라믹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역사의 산 증인”, “감수성이 뛰어난 예술적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었던 포세린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로 집대성하여 포세린 파우더로도 자연감있는 치아재현의 대중화 시대를 연 장본인” 마고또 야마모토 선생에 대한 평가다.

신은 달변가는 아니었다. 강연이나 인터뷰 내내 명료하면서도 분명한 그러나 강한 확신의 한마디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한 마디, 한 구절을 위한 수많은 각고의 노력들이 바로 세라믹의 역사가 되었다.

오팔파우더의 개발은 혁명이었다.
자연치에서 오팔(Opal)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야마모토 선생의 오팔파우더는 혁신 그 자체였다. 프라모델 조립을 좋아하던, 손재주가 뛰어났던 소년은 어느 새 62세의 치과기공분야의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은퇴했지만 지금도 연구개발에 정열을 쏟고 있다
1949년 3월 일본 와까야마 현에서 출생한 마고또의 어린시절은 평범했다. 19세가 되던 해 아이시치과기공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한 동안은 치아를 깍는 데 소질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홀로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9시면 소등되는 기숙사에서도 담요를 뒤집어쓴 채 치아를 깎기 시작했다. 훗날 깍은 치아만도 드럼통 3개는 꽉 찼다고 밝힐 정도로 몰두한 시기였다. 그때부터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神도 처음부터 神은 아니었다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메탈세라믹을 하던 시절, 하악좌측 중절치를 7번이나 리메이크 할 정도였다고 밝힌바 있는 야마모또 선생은 노력형 대가였다. 당시는 셰이드가이드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색조재현성에 매달렸다. 21세부터 포세린을 자연치처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자료를 집대성한 결실이 오늘날까지도 치과세라믹 분야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불명의 명저로 평가 받고 있는 “Metal Ceramics”다.

Metal Ceramics, 치과세라믹의 영원한 바이블
그는 책 출간을 위해 세라믹과 각종 전문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Shofu사와의 만남으로 당시 Unibond파우더의 개발과 연결되면서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과학지식을 축적해나갈 수 있었다. Shofu사와의 이런 인연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출간 당시 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던 이 책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열팽창계수와 컷백 등의 방법을 분석, 연구 발표했고, 서냉과 머플에서 빨리 꺼내면 크랙이 생기는 현상 등을 경험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 해석했다. 하루에 2~3시간밖에는 잠을 자지 않던 시절이었다.

젊은 세라미스트이자 과학자로 오팔효과를 개발하다
Unibond Vintage Opal파우더의 개발은 전 세계 세라믹 파우더의 또 다른 시대를 열었다. 낮 하늘의 파란색이 초저녁 노을로 오렌지색으로 물든 것에 착안하여 포세린 치아의 빛 투과성을 좀 더 자연치에 가까운 느낌으로 재현한 오팔효과를 개발했다. 7년간의 연구를 거쳐 유니본드 빈티지 오팔파우더가 탄생했다.

야마모또 선생이 꼽는 가장 애착이 가는 개발은 오팔파우더이다. 이후 마진파우더와 밸류파우더등 당시로서는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재현해낸 것은 임상에서 본인이 느꼈던 것을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했던 결과다.
당시 기존 파우더에 대한 생각자체에 혁명을 불러 패러다임을 바꾼 오팔파우더나 마진부위의 파우더는 현재는 모든 회사들이 다 채택하고 있다.

1988년경 Unibond Vintage Opal파우더를 시작으로 Vintage, Vintage Halo, Vintage MP까지 현재도 그의 연구활동은 멈추지 않고 있다.

Unibond Vintage에서 Vintage MP까지
1988년 제2회 국제기공학술대회에서 세계에서 최초 오팔효과를 가진 포세린 파우더를 발표한 그는 처음에는 초극세 불투명도재를 개발했다. 이후 은이 들어간 글라스의 황변현상을 발견하고, 은 함유 글라스로 오팔효과를 탄생시켰다. 또한 Value Plus와 Value Minus의 개념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A1과 A2는 색이 다르다. A2면서 밝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밸류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개념을 도입했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도 색을 재현하라
1990년에 Value Plus파우더 개발을 시작으로, 자연치아 색조의 개념을 정립한 NCC시스템(Natural Color Concept)을 개발했다. 이후 색 측정계인 Shade Eye와 Vintage Halo까지 이어졌다. 야마모또 선생의 연구는 파우더 개발에서 색을 분석하고 계측화하여 기공의 분야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치과기공사가 치과에 가서 환자를 보지 않고도 정확한 색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 파우더의 결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파우더 개발에 몰두하면서 MP파우더를 개발했다. 소성수축의 문제를 위해 열팽창 범위를 넓혀 어떤 메탈과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세라믹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세라믹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적합과 교합, 그리고 색상의 순으로 꼽았다. 물론 아무리 적합과 교합이 우수하다고 해도 색상이 떨어지면 안 된다. 색상은 순서로 치면, 두 세번로 꼽지만 사실 따로 놓고 보면 제일 큰 것이기도 하다.
파우더의 선택 역시 열팽창계수에 맞는 파우더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최근의 치과기공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본다
처음 기공일을 시작할 때 신흥역사관과 같은 박물관에나 전시된 산뿌라와 같은 장비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주조법이 등장하며, 메탈 세라믹이 발달되었다. 현재는 한국,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어디나 CAD/CAM 열풍이다. 과거 주조법이 치과기공의 혁신을 몰고왔듯 현재는 주조법에서 CAD/CAM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화를 느낀다.

올세라믹도 소재가 알루미나,지르코니아 등 다양하게 바뀌었다. 이제는 메탈도 CAD/CAM으로 깎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의 주조법이 몰고 온 변화처럼 CAD/CAM으로 인한 기공의 변화도 비슷한 영향으로 올 것이다. 그러나 주조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오랜만에 오셨는데 변화를 체감하는지?
실제 기공현장을 보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포세린을 화려하게 하는 것이 하이레벨처럼 느껴지지만 좀 더 성숙하게 되면 기본에 충실한, 즉, 자연치에 가장 가까운 깔끔하고 깨끗한 치아를 만드는 시기가 온다. 한국은 그 가는 길목에 있는 것 같다.

치과기공사들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선 환자에 대한 생각과 장인으로서의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작품으로 환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너무 좋고, 환자를 환하게 웃게 만드는 것이 우리직업의 끝인 것 같다 내가 치과에 안가도 환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비록 직접적으로 환자의 얼굴을 대면하지는 않아도 환자가 행복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 신을 만들었다
야마모또 선생의 열심히 하는 원동력에 대한 질문에서 그는 항상 왜 그럴까?를 생각하는 호기심이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고 꼽았다. 그에게 있어 치과기공은 일 자체를 사랑하면서도 직업으로 할 수 있어 너무 재미있고 매 순간 호기심과 떨림의 현장이다.

14년 전 신장암에 걸려 현재는 회복했지만 당시에 6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약속대로 현재는 은퇴하여 야마모토 기공소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가끔 임상제작도 하지만 대부분은 연구개발과 저술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끝으로, 힘들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 자신도 도중에 헤매거나 고민하거나 그만두려하는 생각을 가끔하기도 하지만 결국 답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해결할 수 있고 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즐겁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쨌든 자기자신이 뭔가 재미를 찾을 때까지 아주 열심히, 열심히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해나가기를 당부했다. 그는 결국 일생의 노력으로 신이 되었다.

Makoto Yamamoto 약력
1949년 3월 Wakayama현 출생
1970년 아이세카이 치과 치과기공전문학교 졸업
1973년 오사카치과기공사회 창립 10주년 대회 최우수상 수상
1982년 “The Metal Ceramics” 출간-유니본드 오팔파우더 개발
1988년 M.YAMAMOTO CERAMIST’S INC.치과기공소 개설
1988년 오팔효과 연구발표
1997 년1~4 QDT연재 NCC 시스템
2002년 국제세라믹 학회에서 치과기공사 최초로 공로표창수상
Unibond, Vintage, Vintage MP, Shade Eye등 다수 제품개발
 

박치민 소장이 바라 본 마고또 야마모토
“전 세계 세라미스트들이 존경하는 포세린의 신이자 과학자다”
야마모또 선생에 대한 박치민 소장의 평가다. 야마모또 선생이 60세 생일축하연을 개최할 때 전 세계에서 활약중인 일본대표의 세라미스트 300여명이 모여 축하와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여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번 서울에서의 강의 핵심은?
“세라믹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재료의 근본 원리를 알아야 응용력이 생기고 발전도 생긴다. 포세린의 역사와PFM, 올세라믹까지, 역사의 흐름과 재료학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이미지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직접 치과에 내원하여 환자를 보지 않고도 정확한 색조구현을 이룰 수 있다. 기공사가 사진을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사진분석능력을 접목해서 빌드업하면 자연치에 최대한 근접하게 제작할 수 있다.”

일생 동안 끊임없는 열정과 부단한 정진으로 세라미스트이기 이전에 인격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박소장은 지난 7월 24일 서울에서의 학술대회 강연을 지금까지의 강연 중 최고라고 꼽았다. “선생님 일생의 연구업적과 결과를 보여준 강의였다. 시각적으로는 덜 화려할지 몰라도 한 줄 한 줄에 담긴 내용은 수년간, 수 십년 간 연구의 산물로 세라믹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분이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려운 내용이 많아 통역을 맡았던 박치민 소장도 이번 강연회를 위해 일본까지 날아가 야마모또 선생과 5회 이상 사전 연습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선생이 직접 직계조상이 한국계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실 정도로 매운 음식을 즐긴다는 후일담도 털어놨다.

인터뷰를 마치며…
너무나도 유명한 살아있는 세라미스트계의 거장인 마고또 야마모또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데 의외로 그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적인 세라미스트가 되었는지 세라미스트로서, 연구가로 또한 개발자로 일생을 바친 야마모또 선생의 철학과 신념을 독자들께 전달하고 싶었다.

메탈세라믹과 올세라믹 전반을 아우르는 새 저술서를 준비하느라 현재도 실험과 연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야마모토 선생은 언제까지 일하실 계획인지를 묻는 ZERO의 우문에 아마도 생을 뜨기 전까지 일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대가의 끊임없는 정진의 노력과 열정을 나타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도움주신 박치민 소장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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