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의 기묘한 시작과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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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의 기묘한 시작과 진화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8.07.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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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교수

2015년 7월 6일 덴탈아리랑에 ‘기묘한 이야기’의 첫 글을 올렸고 어느새 만 3년이 흘렀다. 치과계에서 접할 수 없는 신기한 이야기를 모아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콘셉트로 많은 임상가들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 치과 외적인 테마를 정해 짧은 글을 쓰겠다는 것이 처음 계획이었다. 치과와는 관계가 없는 의학 저널이나 경제학 서적도 들여다봤고 심지어는 이야기 소재를 찾는다는 핑계로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영국의 ‘블랙 미러’, 우리나라의 ‘서프라이즈 TV’ 등도 찾아서 시청했다. 최근에는 구글과 같은 IT나 교육 분야의 이야기도 언급했다. 아쉽게도 들인 공에 비해서는 늘 보잘것없는 잡설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지적 외도가 분명 필자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구글 플랫폼을 이용한 교육의 혁신 분야를 통해 얻어진 지식과 경험들은 의미 있는 자기계발의 노하우로 거듭나게 됐고, 마침내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구글하라(가칭)’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앞두게 됐다. 유명한 극작가이자 의사였던 안톤 체홉의 ‘의학은 나의 아내요 문학은 내 애인이다’라는 말처럼 본업은 본업대로 하면서 다른 분야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었던 셈이다.

도대체 치과의사가, 대학교수가 왜 이리 다양한 분야를 파고 다니는지 많은 이들이 의아해한다. 유명 강사와 교육 전문가들, 그리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가득한 강의장에 앉아서 필자의 강의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보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생경한 기분이 드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색함에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변명은 있다. 예전처럼 한 우물만 파고 방망이 다듬는 노인처럼 수도자와 같은 삶의 방식이 미덕으로 간주되던 기존의 전문화 사회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강조되는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큰 장점을 갖기 어렵게 됐다고들 한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평생 6-8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얼마 전 다보스 포럼에서는 내다봤다. 자신이 직업을 바꾸거나 전공을 변경해서가 아니라 로봇과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어쩔 수 없이 직업을 바꿔야 하거나 아예 새로운 경제로 새 판이 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다양한 직업과 전공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야 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행보가 그리 ‘기묘하지’ 않은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진화론 분야에는 굴절 적응(Exapt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획득한 하나의 기질이 본래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활용된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새의 깃털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공룡은 깃털이 없었지만 진화의 과정 중에서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깃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통해 체온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지만 아마도 그 깃털이 날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는 몹시도 용감한 그리고 엉뚱한 한 마리의 공룡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날 높은 나무에서, 또는 절벽에서 어슬렁대다가 아차 하며 떨어진 그 공룡은 살고싶은 마음에 깃털 하나하나에 힘을 담아 허우적댔을 것이고 어설프게나마 짧은 비행을 하고 무사히 착륙했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공룡은 깃털의 새로운 순기능을 발견하게 됐고 결국 이렇게 조류가 등장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삶에서 약간의 고난과 역경은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서 난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순간 놀라운 진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기묘한 이야기 기고’라는 난관은 필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치과와 관계없는 영역에 대한 탐색을 계속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아이디어들을 얻어 다시 거꾸로 치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논문을 통해 발표한 Hidden X라는 봉합술이다. 이것은 의과 영역에서 딱 한 번 논문으로만 언급된 적이 있는 봉합술인데 그 외의 분야에서는 크게 활용되지 못하던 술식이었다. 하지만 이 술식을 발치 후 치조제 보존술에 적용하게 되면 협설 측으로 당기는 힘을 발생시키지 않고 아주 안정적으로 이식재를 보존해 더 나은 골 재생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점차 이 봉합술은 해외에서도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깃털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한 공룡이 된 기분이다. 

이제 세상은 융합과 협업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소유하고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답이 나오는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치과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생계가 어려워 낮에는 렌즈를 가공하고 밤에 철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독특하고 천재적인 철학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깎은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철학자들의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스피노자가 낮에 렌즈를 깎는 행위가 분명 그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렌즈를 통해서 자신의 업을 바라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 우리가 지적인 외도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3년처럼 앞으로도 계속적인 외도를 통해 더욱 ‘기묘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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