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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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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8.07.0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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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명예교수

 인류의 발전이라는 명제에서 요즘 회자되는 용어로 앙트레프레너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불어의 기업인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문명의 발전 및 산업의 혁명과 연관돼 지금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즉 새로운 문명의 발전은 기존의 관념을 탈피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앙트레프레너, 즉 창조적 파괴자라 부른다고 한다. 얼마 전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앙트레프레너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어떻게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다큐 식으로 방영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얼마 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한 달 동안 자동차로 돌아봤다. 한때는 유럽을 지배하고 남미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러나 지금은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위세에 눌려 유럽의 변방의 나라처럼 여겨지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강국이었다. 스페인만 해도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3만 불 정도의 국민소득과 5천여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지만 그네들의 문화의식이나 시민의식은 우리보다는 몇 수 위로 보였다.

특히 1500년대 전후 대항해 시대를 맞아 그네들이 보여줬던 신대륙을 찾기 위한 스페인 포르투갈 앙트레프레너들의 모험은 역시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옛말이 틀리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앙트레프레너는 마치 데미안의 새로운 세상을 찾으려면 네가 갇혀 있는 알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을 과감하게 깨 버려야 한다는 데에서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앙트레프레너들의 예로는 종이, 인쇄기술, 증기기관, 전화, 컴퓨터 등 수도 없이 많지만, 중세 시대 바다는 끝이 있다는 생각을 깨고 지구의 다른 쪽 신대륙을 찾아 나선 항해가들의 용기와 혁신에 비교되는 것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의학도 많은 앙트레프레너들의 도움을 받아 발전해 왔다. 특히 영상 의학 분야에서는 X-선과 같은 과학과 물리학의 발전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페니실린의 발견도 플레밍의 전환적 사고가 없었으면 실험실 창고에 묻힐 뻔했던 사건이다.

긴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페트리 접시에서 곰팡이가 핀 주변에 포도상구균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Penicillium notatum라는 곰팡이에서 나온 물질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재수 없이 곰팡이가…’하고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환자의 질병을 다루는 임상의학에서 보면 어떤 새로운 기술이 임상을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바꾼다는 일은 좀처럼 없다. 몇 달이 멀다하고 새로운 암 치료 기술이 발표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만다. 물론 실험실에서는 획기적으로 암 치료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언론에 발표가 되겠지만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같은 부위의 암이라 할지라도 세포의 성질이 다른 경우가 많은 실제 임상에서 일관성 있게 적용되기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러한 새로운 기술들이 축적되고 그러다 보면 암을 정복할 날도 오게 될 것이다. 치과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0여년 이래 치과계의 혁명이라고 부를만한 임플란트도 실은 훨씬 이전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시도돼 왔던 것으로 이후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발전돼 온 것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의학에서만큼은 하루아침에 새로운 혁명은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다.

간혹 치과의사들 중에 앙트레프레너를 자처하고 자기가 고안해 낸 새로운 임상기법이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40여 년 간의 임상을 통해 느낀 바로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하루아침에 결과를 바꾸는 일은 없다. 물론 근관치료의 NiTi 파일이라든지, 전자근관장측정기 같은 기술들은 근관치료의 정확도를 높이고 시술시간을 현저하게 줄이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장비들도 원칙에 의거한 정확한 사용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장비 고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 30년 가까이 현미경을 사용하면서 지금은 현미경 없는 진료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필수 장비가 됐다. 그러나 나도 처음 사용을 시작할 때는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몇 번을 포기할까 망설였었다.

요즘 나의 권유에 의해 현미경을 구입한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사용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현미경이 알아서 치료를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떠한 장비나 새로운 기술도 사람의 노력과 의지 없이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다. 

치과의사의 앙트레프레너는 기존의 원칙을 지키고 최선의 정성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는 것이지, 꼭 새로운 기자재와 재료를 이용한 혁신적인 기술에 의한 것만은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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