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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조 학생의 생각의 틀] 행복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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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조 학생의 생각의 틀] 행복의 정의
  • 유성조
  • 승인 2018.05.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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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조(단국대학교치과대학 본과 2학년) 학생

밝을 철에 배울 학을 쓰는 철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사람이 왜 존재하는 지에 대한 물음을 지울 수 없다. 당장 눈앞의 즐거움을 목표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 질문의 답을 역사에 맡기고 그 역사 속에서 본인은 인류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싶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과정이 어떠하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우리는 종종 다양한 행복을 느끼며 추구한다. 하는 일이 잘 풀릴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는 모습을 볼 때 등의 상황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감정에 기반하는 것일까 이성에 기반하는 것일까.

행복이 감정에 기반한다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본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이성에 기반한다면 배우지 못한 자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제한되는 것일까. 행복을 욕구의 해결을 통해 얻는 관점으로 살펴보자.

Maslow의 인간의 5단계 욕구를 살펴보면 본능과 이성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 본능에 가까울수록 가장 기초적인 욕구에 가까우며 마지막 단계의 욕구에 가까울수록 이성의 영역이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본능으로 기인한 행복은 일시적이며 이성으로 기인한 행복은 지속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 글에서 언급할 행복은 이성에 기반한 행복을 지칭하도록 하겠다. 배우지 못한 자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행복의 다양함을 좀처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복의 기회가 제한된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그들 자신인데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가 그들을 ‘안타깝다’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필자는 조심스럽게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평생을 새로운 행복을 접하지 못할 오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느낄, 언젠가 아는 것의 행복을 느끼게 됐을 때의 박탈감이 안타깝다.

혹시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살다 한국에서 처음 아이스크림을 접한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면 그들이 흘린 눈물을 통해 그들이 느낀 새로운 감각으로부터 얻는 행복감과 그동안 그런 기회가 없었다는 슬픔이 공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필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적어도 덴탈아리랑을 통해 이 글을 읽게 되는 독자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다양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한다. 또한 옛말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본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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