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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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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상전벽해
  • 조선경 원장
  • 승인 2018.05.2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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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포시즌치과) 원장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의 상전벽해는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로 자신도 모르게 달라진 세상 모습을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고사성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던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2020년까지 근로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린다고 공약했다. 그 소식에 근로자들은 환영했지만 사업자들은 경기가 좋아지기는커녕 그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고 자영업자들의 경영이 어려워져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 이라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2016년에 6030원이던 시급을 2017년에 6470원으로, 2018년에 7530원으로 인상하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하강하고 있다. 또한 올해 2월 28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정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다. 근로자 5~29인 기업은 2022년 12월 31일까지는 1일 8시간 추가 근무가 허용되지만 한 주에 초과 근무를 했다면 다음 주에 근무시간을 줄여 평균 주 52시간을 맞춰야 하고 최대 3개월까지 탄력적으로 운용하되 초과근무는 1주 64시간, 1일 12시간을 넘을 수 없지만 5인 미만의 기업은 적용이 제외된다.

관공서, 공공기관에만 적용됐던 연 15일가량의 관공서 공휴일이 민간기업에서도 유급휴일로 보장받게 되고 휴일근무수당은 현행 그대로 유지되며 휴일에 일할 경우 8시간 이하의 근로는 150%, 8시간 초과의 근로는 200%를 수당으로 받는다. 

그런 탓인지 뒷골목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편의점은 자취를 감추었고 직원을 두 명 두었던 사업자는 한 명으로 줄이고 가족구성원끼리 할 수 없는 사업은 개원을 꺼린다는 얘기도 있다.

현 상황을 반영하듯 요즘 개업 치과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인 보조인력수급은 더욱 힘들어졌다. 치과보조인력들은 5인 이하의 사업장은 혜택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업을 꺼리고 5인 이상의 사업장은 그래도 보조인력수급이 수월하지만 비용이 예전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예전처럼 원장과 직원이 가족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월급이 늦어지거나 본인에게 불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면 고용노동부에 바로 신고할 만큼 각박하다. 직원이 핸드폰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직을 생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는 이웃 원장의 말대로라면 갑과 을이 바뀐 지 오랜 것 같다. 

3년 전 내가 경영하는 치과 주변의 재개발로 인해 1만 명가량의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주변 경기가 악화됐고 치과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월급 인상을 요구하던 직원이 출퇴근 거리상의 이유로 그만둔 후 직원 채용이 쉽지 않은 터라 1명 남은 조무사를 달래며 1년간 힘겹게 견디고 있다. 하지만 한 명의 직원은 혼자여서 힘들고 전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두 명을 두시더니 왜 나는 혼자 근무하냐며 늘 짜증 섞인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상황을 설명하며 달래보지만 표정이 짜증스럽거나 환자가 많은 날에는 안절부절못하고 맘 고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혼자 근무하는 게 고마워서 주 40시간 근로시간 맞춰주고 기분을 달래보지만 가끔은 서운할 만큼 나를 힘들게 한다. 다른 병원은 어떻다더라 하며 나를 떠볼 때면 이러면서까지 치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25년 전 개업 당시를 떠올리며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그때는 직원들에게 치과 원장은 확실한 갑이었고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부당 행위를 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하고 제멋대로 굴어도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변해 많이 좋아져서 그런 행동을 하는 원장도 없으려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직원들이 더 우위이기 때문에 큰코다치는 경우가 많다.

통상적으로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갑은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진 자를 지칭하지만 요즘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정의하기 힘들다.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직원의 말 한마디에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2018년을 살아가는 내가 갑인지 을인지 잘 모르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옛날 유행했던 가요인 ‘아, 옛날이여’라는 가사가 오늘따라 유난히 귓가를 맴돈다. ‘많이 좋아진 거잖아.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직업에는 귀천도, 상하도 없는 거니까’ 하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되뇌며 상처받은 나를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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