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교수의 1년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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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교수의 1년 고개
  • 김영수 교수
  • 승인 2018.05.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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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고대구로병원 예방치과) 교수

도대체 얼마나 잤지? 혹시 이상한 잠꼬대를 한 건 아닐까? 지나가는 파란색 수술복의 간호사가 빙긋 웃는 모습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괜히 일찍 몸을 일으키려다 어지러움에 바닥으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누워 있기로 했다. 도대체 내가 수면 마취로 잠든 사이에 내시경 보는 교수(소화기 내과)는 무슨 짓(?)을 했기에 계속해서 가스는 주책없이 나오는 것일까? 이번에는 대장 내시경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옆 침대의 일반인(?)과 동시에 나도 일어나라고 한다. 더 자고 싶은데 말이다.

필자는 1년에 한 번씩 무조건 종합검진을 받는다. 필자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서 비용이 적게 들도록 혜택을 줘 부담 없이 종합검진을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2004년에 이 병원에 와서 고혈압 진단도 받고 내과에서 계속적인 관리를 받다 보니, 내 몸은 절대 좋아지는 일이 없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빠지는 추세에 들어가는 아주 당연한 진리를 깨닫고 나서는,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 국어 책에서 읽었던 ‘삼년고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 그 ‘3년’을 ‘1년’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대부분의 치과의사 선·후배들을 만나 보면, 대체로 ‘의사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필자 역시 100%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환자 진료를 마치고, “‘6개월’ 내지는 ‘3개월’ 후에 오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동안에 무언가 악화가 되더라도 그 시기에 오면 발견해서 처치할 방법이 있다는 ‘구강질병관리 원리와 원칙’에 입각한 처방인 것과 같이, ‘의사들’의 이론은 1년에 한 번씩은 진찰해 보아야 병의 발생을 감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힘껏 부시고 참으세요. 네, 잘 하셨습니다. 폐활량 좋으세요’라는 의료기사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김 선생도 이제 나이가 들었네….’로 말 끝을 흐리는 초음파 담당 교수님(필자보다 훨씬 연상)이, 듣는 선생 힘 빠질까 봐, ‘나이 들면 뭐 다 그렇지요’라고 위로하면서 목 부위의 석회화 조각들을 사진 찍어 준다. 신체 측정 때에는 그래프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필자 몸에는 ‘내장 지방’ 밖에는 없는 것일까 하며 실망하면서, 헬스장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된다.

사람은 평소 베푼 대로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 병원에서 필자가 그리 나쁜 X은 아니었나보다. 종합검진을 받으러 가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필자를 VIP 모시듯이 대한다. 비몽사몽간에 접수대에 앉아 있는 필자에게 며칠 후 결과 통보서에 적힐 내용들을 담당 직원들이 미리 알려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고, 필자의 머리 속에는 앞으로 1년간 할 일을 구상해 본다. 종합검진을 위해 강제 휴진을 한 필자를 위해 1일 운전수로 채용된 아내와 늦은 아침식사를 하면서 혼자 잘난 척하며 지낸 지난 1년을 반성도 하고, 이제 몸조심하면 앞으로 1년간은 더 버틸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1년간 주변 식구들에게 못해 준 일들을 우선 해 주어야 하고, 평소 계획했던 일들 중 이번 1년 내에 할 일 등도 생각한다.

졸업 동기들이 모이는 B site에 들어갔더니, 치과전문지에 실린, ‘치과의사의 죽음’에 대한 토론이 진지하다. 신앙심이 돈독한 친구들이 많은데, 이렇게나 세상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오늘만 살아’라는 대사 대신 ‘나는 1년은 안심하고 살아’라고 영화의 대사를 살짝 바꾸어 본다. 치과의사 지역단체장은 해당 지역 종합병원들 간의 협약을 맺어 1년에 한 번씩은 개원하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몸에 청진기 한 번 대지 않는 치과원장들의 종합검진을, 할인된 가격으로 VIP 대접 받으면서 받는 사업을 추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의사 친구’를 우리의 주치의로 두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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