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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치과와 노이즈 그리고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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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치과와 노이즈 그리고 시그널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8.04.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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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교수

치과와 소리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환자들이 치과에 방문해서 가장 두려운 순간은 마취하기 직전이라는 연구가 있다. 하지만 치과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두려움을 야기하는 것은 치과 드릴이 내는 소음이 아닐까 싶다. 만일 드릴이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면 환자들이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어쩌면 드릴 소리 특유의 날카로움도 무섭지만 소음의 크기 자체가 큰 것도 큰 두려움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소리를 감소시킨 드릴도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보편화 되진 않았다.

차라리 그 소음을 희석시키기 위해 노래를 트는 것은 어떨까?

재미있게도 음악이 환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이미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분석된 바 있다. 2015년 Hole 등이 Lancet이라는 권위 있는 저널에 게재한 논문 (Music as an aid for postoperative recovery in adul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Hole et al., 2015 The Lancet)에서 4261편의 논문 검색 후 나온 메타 분석 결과는 음악이 환자의 술후 통증과 불안 그리고 진통제 복용의 빈도를 유의성 있게 감소시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전신마취 중에 음악을 재생한 경우에도 환자의 술후 통증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전신마취 하의 환자일지라도 음악을 듣는 것은 분명히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좋은 영향을 주는 셈이다. 따라서 드릴의 소리도 희석시키며 환자의 불안과 통증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면 치과 진료실에서 음악을 트는 것은 분명 좋은 시도임에 분명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과는 진료 특성상 수술이 많아서인지 음악을 많이 틀어두는 편이다. 교수마다 전공의마다 음악적 취향이 다르기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어 그날 그날 음악을 듣는 재미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 필자도 이에 질세라 음악을 가끔 듣곤하는데 최근에는 그냥 스피커로 듣지 않고 약간의 비용 투자를 해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이어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드릴 소리와 석션 소리에 음악까지 합해지면 무시하지 못할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이스피드 드릴 자체만으로 낼 수 있는 최고 소음은 86 dB에 달하며, 85dB 미만의 소음일지라도 5년 또는 그 이상 노출 시 청력 상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연구(Assessment of noise intensity in a dental teaching clinic, 2017 BCJ open)가 있기에  분명 이 소음에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가장 오래 노출되어 있는 치과의사들은 청력 보호를 위해서 반드시 보호 장비를 하거나 정기적으로 청력 검사를 해야 할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이용해 주변의 소음이 차단된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며 진료를 하게 되면서 귀는 한결 편안해졌지만, 반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이질감이 들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환자의 반응이나 주변 진료 인력들의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평소 얼마나 작은 소리 하나로도 환자의 불편감이나 진료인력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노이즈는 분명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존재이며 특히 치과의사의 청력에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음은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신호와 소음(더퀘스트, 네이트 실버 저)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쓰레기와 같은 소음(noise) 속에서 진짜 정보, 즉 신호(signal)를 찾아 미래를 예측하는 노하우를 이야기하고 있다. 신호는 노이즈와 함께 온다. 그렇기에 유의미한 신호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귀를 열고 노이즈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 소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노이즈에도 마음을 열자. 그리고 노이즈 속에서 시그널을 찾아보려 노력해보자. 인생이 한결 여유롭고 의미있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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