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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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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법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8.03.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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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명예교수

 



예로부터 사람 좋은 사람들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가히 법의 홍수 속에서 사는 것 같다. 크게는 나라를 뒤흔들 만한 정치부정의 소송 건에서부터 개인 간의 민형사적인 소송에 이르기까지 매일 같이 주요 법원판결의 기사들이 신문지면을 도배한다. 이렇게 소송이 많아진 데에는 꼭 사람들이 더 포악해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사회가 더 다분화 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송은 비단 현대에서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뿌리가 깊다. 한 아이를 가지고 싸웠던 두 여인을 명판결로 단칼에 해결해 주었던 솔로몬이나,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징벌하려던 유대인들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있으면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라고 했던 예수의 판결은 법 조항보다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은 명판결로 기록되고 있다. 감동적인 판결도 많다. 경제공황이 절정을 달리던 1930년대 초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가 이유를 물었을 때 그 노인은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 사흘을 굶었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한 판사의 판결은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빵을 훔쳐야 할 정도로 경제공황이 심한 상태에서 10달러는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액수였다. 노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해 판사가 용서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방청석에서는 판사가 너무 심하게 한다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다. “이 노인은 이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께서도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았다. 이 놀라운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 돈이 모두 57달러 50센트였다.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다. 이 명판결로 유명해진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는 그 후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뉴욕 시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했던 존경 받는 인물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뉴욕 잭슨 하이츠에 있는 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여 라과디아(La Guardia Airport) 공항이라고 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TV에서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변호사가 나와서 ‘이혼하는데 단돈 20불’ 하고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20불로 사람들을 유인하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웃돈을 받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특권층으로 여겨졌던 변호사가 단돈 20불짜리 광고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미국의 law school 제도에 의해 과잉 배출된 변호사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지니까 불필요한 소송을 유도해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잉소송이 법의 사각지대였던 의료계까지 이르러 변호사들이 의료소송 건에 군침을 흘리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양의 의료소송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몇십 년을 단골로 다니던 환자가 의사를 소송한 후에도 웃으면서 계속 그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그 의미는 나는 당신한테 아무 불만이 없는데 변호사가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 의사도 자기를 소송한 환자를 또한 스스럼없이 대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치과계에도 부쩍 소송이 많아졌다. 소송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하겠지만, 법에 대해 과분한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 소송은 정치인들이나 시민운동가 등 의식화된 사람들이나 또는 재산 문제로 얽힌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더구나 치과계 내에 헌법소원해야 할 정도로 범국민적인 일이 있으리라고는 필자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시대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정치나 이권 하고는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해 온 치과계 내에서 이렇게 소송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과연 치과계 내에 법에 호소할 만큼 국민적인 관심사들이 많아졌나 의아할 뿐이다.

한동안 네트워크 치과 문제로 헌법소원까지 올라가 일반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고 있을 때 어느 친구들 모임에 갔더니 이 친구들이 치과의사들 간의 법정 싸움을 매우 의아해했다. 그들의 눈에는 ‘싸게 해주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단순 생각과 함께 ‘결국은 치과의사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생각이 지배했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에 치협 회장 선거무효를 확인하는 판결을 보면서 머리에 떠올랐던 걱정은 국민들은 이러한 법원의 결정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문지 외에는 일반 언론에 그렇게 크게 보도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감사할 뿐이다. 소송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대화해도 소통이 되지를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국은 법에까지 호소했겠지만 국민들에게 비치는 치과계 내의 싸움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더 치과계 내부의 문제가 사회의 법에 기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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