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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병원장의 지나가는 이야기] 화재와 중환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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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병원장의 지나가는 이야기] 화재와 중환자실
  • 김기덕 병원장
  • 승인 2018.02.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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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치과대학병원 김기덕 병원장



최근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의 사고와 제천 화재 참사를 보면서 참담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왔다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같은 사고로 귀중한 여러 목숨이 희생 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 두 사고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발생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비슷한 사고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두 사고 모두 현장의 소방관과 의료진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잘못을 한 사람들로 대중과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더욱 철저하게 대비 및 대응을 하였더라면, 더 조심하고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러한 참사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고인들과 유족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이러한 두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스템이 문제인 사고이기 때문에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같은 곳 또는 다른 곳에서 반복적으로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제천 화재사건의 경우 비슷한 사건이 서울시와 같은 큰 광역시에서 일어났다면 이렇게 큰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제천 소방서의 경우 현장 인력이 법정 인력의 47. 4% 밖에 안 되고 그 중 41%는 현장 경력이 2년 미만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제천에서 큰 불이 안 나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이러한 절반 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는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아무리 실수를 안 하고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원가 보전율은 평균 80% 이하이고 중환자실의 원가 보전율은 이보다 더 심각해 55%라고 한다. 이러한 제한된 상황에서 아마도 노후된 장비와 제한된 인력으로 악전고투하는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운영했을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 하에서 의사들의 피로도 증가와 간호사들의 잦은 사직과 근무 이동 등도 동반되지 않았을까 짐작도 된다. 첨단의 시설과 장비, 충분한 인력으로 더욱 더 안전하고 철저하게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싶지 않은 대학병원이 있을까? 제대로 된 중환자실을 운영하려면 주 40시간 근무를 가정할 때 12명 이상의 전문의가 중환자실에서 교대 근무를 하면서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재원을 누가 마련해 줄 것인가. 그동안 많은 의료기관이 원가에 못 미치는 건강보험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비급여 수가를 통한 돌려막기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며 근근히 병원을 유지해 왔다. 새 정부 들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비급여를 점진적으로 없애고 모두 급여화하는 정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비급여 수가로 그나마 병원을 유지하여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병원을 꾸려나갈 것인가. 병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답답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모든 급여수가가 최소한 원가보전이 이루어지도록 대대적인 손질과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과감한 정책 전환을 통해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화재와 같은 재난, 응급실, 중환자실, 최근에 총상을 입은 탈북 북한병사를 통해 부각된 외상 센터 등등 환자와 의료기관 만이 부담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규모의 투자와 안전하고 철저한 유지 관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시스템을 확보해 줘야 한다. 언제까지나 현장의 임기응변이나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의료인의 헌신과 희생만으로 꾸려나갈 수는 없다.

지난 연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전공의들이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피켓시위를 했다. 눈에 띄는 피켓 문구가 눈가를 맴돈다.

‘의료왜곡의 한가운데에 국민과 의사를 몰아넣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환자를 볼 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최선의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의료인들의 절실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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