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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나는 반항한다. 행복한 시지푸스는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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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나는 반항한다. 행복한 시지푸스는 고로 존재한다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7.12.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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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글로벌치과) 원장

인생이 하나의 연극이라면 갑자기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 타고 출근해서, 오전 진료하고, 점심식사, 다시 오후 진료, 저녁 식사, 그리고 잠. 반복되는 월화수목금, 그리고 토요일. 어느 순간, 불현듯이 ‘왜?’라는 의문이 떠오르고 놀라움 속에 문제를 자각하며 모든 일이 시작된다.

동기들과의 단톡방에서 누군가 기사 링크를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얼마전 국정감사에서 모 의원이 NiTi 파일 재사용을 문제 삼았다는 기사였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사용 실태를 파악해 현황을 점검하기로 했다고 한다. 필자가 주로 쓰고 있는 NiTi 파일의 경우 1회 사용할 시 재료비만 대략 5만 원이 들어간다. 

반면 공단에서 인정해주는 NiTi 수가는 1만2천 원에 불과하다. 원가 보전율이 25%밖에 안되는, 하면 할수록 손해나는 치료다. 부조리다.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면, 헐값으로 매겨진 보험수가를 벌충해주며 치과 경영을 가능하게 해주던 비급여 치료들마저 급여로 편입될까 걱정이 앞선다. 

병원의 경영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계산기를 두들기며 하소연하고 싶다. 이것도 부조리다. 그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았고, 아직도 그의 최근 행보를 접하며 마음 한편으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은 내 자신의 부조리다. 

그 와중에 보건의료단체의 맏형 격인 대한의사협회의 비대위는 헛발질을 거하게 날렸다. 여차하면 메시지도 메신저도 공격당하는 현 시국에 극우 웹툰작가를 섭외하지 않나, 비대위 일부의 극우적 정치색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버렸다. 

맏형의 큰 역할은 고사하고,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명분도 잃고, 무엇보다 설득해야 할 국민들의 선입견만 강화시켰다. 역시나 부조리하다. Who watches the watchmen? 심평원은 누가 심사하고 평가하나? 

재정적 부담은 줄이고 혜택을 늘리고 싶은 정부(1), 비용 집행의 효율성이 1순위인 심평원(2), 현재 또는 잠재적 환자인 국민(3)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비용을 더 내고서라도, 또는 정해주는게 아니라 내가 받고 싶은 치료를 받고 싶다는 환자의 바람은 근거중심의학에 근거해서 최선의 치료를 하고 싶다는 일부 의료인들과 오히려 더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터넷에서 건설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의사, 혹은 치과의사 한달에 얼마 번다, 더 뽑자는 목소리에 묻힌다. 

이런 점에서는 제 무덤을 파는 국민도 사실 부조리하다. 

그리고 익명의 네티즌으로 대변되는 불특정 다수의 국민에게 이런 부조리함을 토로하는 의료인들조차 뭉뚱그려 그저 적폐로 규정당함으로써 그 부조리함이 완성된다.

나는 위의 모두가 부조리하다고 말했는데, 이 주장은 너무 앞서 간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세계는 그 자체로는 합리적이지 않을 뿐이고, 바로 이 비합리에 맞서 명료한 결론에 이르려는 이성의 필사적인 열망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부조리가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문제는 크게 한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늘 반복되어왔다는 점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비슷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그랬고, 지금도 이런 식이다. 

마치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리는 시지푸스의 형벌처럼 지치지도 않고 반복된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푸스에게 신들은 산꼭대기까지 바위 덩어리를 굴려 올리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올려 놓으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보며, 아마 신들은 이 무익하고도 희망없는 일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지푸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생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출처에 따라 내용이 엇갈린다. 모두가 일치하는 부분은 시지푸스의 형벌 부분이다. 

그를 이루는 신화의 핵심은 형벌이다.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존재를 다 바쳐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 그는 부조리의 영웅인 것이다.

부조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논하기 위해서는 실존주의 문학가 알베르 까뮈의 철학적 에세이 ‘시지푸스의 신화’를 참고함이 좋을 듯 하다. 

△알베르 까뮈의 철학적 에세이 ‘시지푸스의 신화’. 우리나라에는 시지프 신화라는 이름으로 민음사, 책세상,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됐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쓴 이 작품에서 그는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고 반항을 통한 긍정과 행복을 역설했다.

까뮈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답은 철학적, 또는 육체적 자살을 통해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의 사막’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그대로 버티고 있는 ‘반항’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견지해야만 하고, 그것이 비록 본인에게 적대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반항’이다. 까뮈에게 반항은 명철한 의식을 견지하면서 인간의 삶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시지푸스가 산 정상을 향해 땀 흘리고 분투하며 바위를 밀어 올리는 모습이 아니라, 또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면서 시지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형벌을 받아들인다. 애초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이지만, 삶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할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고,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한 것이 된다.

시지푸스의 하산이 어떤 날에는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떤 날에는 기쁨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지푸스의 모든 은밀한 기쁨이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푸스를 상상해야만 한다. 거기에 행복한 치과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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