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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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 22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11.0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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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작은 에피소드



오늘은 호세가 와인을 낸다. 아까 에토샤 들어오기 전 작은 마을에서 잠깐 쇼핑들을 했는데, 호세가 박스와인을 하나 사 놓은 모양이다. 돈으로는 만원도 안되지만 그래도 신통하다.

호세는 미국 죠지타운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몇 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이번 가을학기부터 MBA를 시작한단다. 그 사이 몇 개월 공백이 있어 평생 이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먹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소위 gap months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행동거지로 봐서 집안은 꽤 유복한 것 같은데, 그래도 모아 놓은 돈으로 여행하고 있을 텐데 여행 내내 마음씀씀이를 보면 미국 젊은이 치고는 꽤 교육을 잘 받은 것 같다.

처음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내 이름의 이니셜인 SJ로, 집사람은(용혜) Yong인데, 영원히 젊은 사람을 뜻하는 Young이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호세는 끝까지 Mr Mrs로 호칭을 한다. 훌륭한 젊은이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들 틈에서 지내려면 조심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궂은일은 먼저하고 좋은 일은 나중에 하기만 하면 대개 문제가 없다.

우선 출발시간에 절대 늦지 않도록 항상 먼저 준비하고 주방집기나 접이식의자 등 공동집기 나르는 일 등도 남보다 먼저 한다. 식사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은 늘 배고파하기 때문에 모두다 음식을 챙겨간 후에 일어난다.

낮부터 속이 좀 불편했는데 화장실을 가니 변이 정상이 아니다. 여행 중 배탈이 나면 큰일인데…. 어제 뭘 먹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될 것이 없었다. 나는 생우유 소화를 못 시키기 때문에 늘 락토즈 없는 것이나 두유를 먹는데, 오늘 아침에 멘지가 두유를 새로 따 놓아서 씨리얼에 조금 많이 넣기는 했다. 그래도 그건 새로 딴 것이라 배탈의 원인은 아닌데…. 어쨌든 여행 다니면서 설사가 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일단 지사제를 먹어두었다.

저녁을 먹고 워터홀에 가서 동물 구경을 하고 오는데, 돌아와 보니 일행 여덟명이 와인을 마시다가 나를 보더니 조인하란다. 내가 속이 안 좋아서 일찍 들어가 쉬겠고 했더니 크리스틴과 프란지, 또 두어 사람이 나도, 나도 하고 손을 든다. ‘어? 이건 문제가 있는데…’ 언제부터냐고 물었더니 한결 같이 오늘 점심 때부터 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 갔구나….’ 이건 심각한 문제다. 우리 식품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멘지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이 늦어 큐와 멘지는 이미 잠자리에 든 모양으로 보이지를 않는다.

큐와 멘지는 트럭 내 사물함 물건들의 보안에 대단히 신경을 써서 아홉 시가 되면 트럭출입문을 자물쇠를 잠그던지 아예 트럭 안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 안에서 잠을 잔다. 내일 생각해보고 오늘은 그만 쉬자.

밤에 화장실을 갈려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개 만한 동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는 아니고 여우보다는 크고, 그렇다고 늑대는 없는 지역인데 가만히 보니까 사진에서 본 쟈칼 이었다. 음식을 찾느라 정신이 팔렸는지 사람을 보고도 본 척도 안 한다.

언젠가 이집트 투탕카멘 묘 입구에서 본 쟈칼은 죽음의 신 아누비스의 무서운 모습으로 위세도 당당하고 저승을 지키는 사자처럼 무섭게 보였는데, 이곳 쟈칼은 개만도 못하구나 쓴웃음이 나온다. 하긴 투탕카멘 쟈칼 이라고 무덤을 지킬리가 있겠나 먹이를 찾아다니는 동물에 사람들이 의미를 덧입힌 것이지.

아침에 일어나니 늘 그랬던 것처럼 멘지가 벌써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멘지 한테 어제 몇 사람이 배탈이 났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표정이 어두워진다. 큐와 멘지는 고향친구이면서 큐가 어느 팀을 인솔하든 데리고 다니는 단짝 비즈니스 파트너 이지만  역할분담은 철저해서 서로의 임무를 철저히 지킨다.

예를 들면 주방과 식사에 관한 사항은 멘지가, 여행과 이동에 관한 사항은 큐가 전담하는 식이다. 멘지로써는 만약 식중독으로 회사에 컴플레인이 들어가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르니 걱정을 할 수 밖에 없겠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을 해서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단지 네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다 했더니 thank you 한다. 아침을 먹고 크리스틴을 만나서 멘지 한테 이야기 했으니까 더 확대하지 말고 그냥 덮어두자 했더니, 배탈의 원인을 안 것 같다고 한다.

어제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는데 사용된 마요네스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제 점심에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마요네스를 빵에 듬뿍 발라서 먹었다.

크리스틴은 역시 예민하다. 어제 주유소에 들렀을 때 일행들은 전부 나가 수퍼에서 일상품을 사고 있는 사이 기사가 냉장고를 손 보던 적이 있었단다. 아마 식품보관 냉장고가 고장 나서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멘지가 주유소 수퍼에서 큰 얼음 덩어리를 사서 식품냉장고에 넣던 기억도 난다. 아마 냉장고 수리가 잘 안 되었던 모양이다.

다시 멘지를 조용히 불러서 크리스틴이 했던 이야기를 전했더니 무릎을 치면서 양동이에 깨끗한 물을 길어 그 안에 무슨 소독약 같은 것을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보관되어있는 식품을 모조리 꺼내더니 소독수건으로 샅샅이 닦아내는 표정이 마치 중죄인을 닥달 하듯 진지하다.

그 바람에 출발이 30분 정도 늦어져 영문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 큐 까지도 멘지가 오늘따라 왜 저렇게 깔끔을 떨지? 하는 뜨악한 표정이었지만 내막을 잘 아는 크리스틴과 나는 슬며시 눈웃음만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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