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주역과 상악동, 기묘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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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주역과 상악동, 기묘한 만남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7.08.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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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교수


치주환자를 장기간 관찰하다보면 환자의 구강위생 노력과는 무관하게 환자의 몸 스스로가 보이는 반응들이 눈에 들어온다.

양치질은 죽어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볼 때 마다 잇몸뼈가 녹아내려가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양치질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도 잇몸에 피 한방울 안 나는 상태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이들이 어떤 면역 체계와 골대사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바로 이러한 것들은 환자가 가진 체질 때문은 아닐까하고 생각을 종종 해보는데 한의학과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해보면 체질로 환자를 분류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환자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주의 사항과 리콜 주기를 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획기적인 발견이 아닐까.

얼마 전 상악동 거상술 술식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잔존골의 두께에 따라 치료 계획을 세우는 방법에 관한 짧은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또 해 보았다. 단순하게 잔존골의 두께로만 술식을 결정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악동 내의 병소, 골질, 환자의 저작력, 골 치유 능력, 그리고 술자의 숙련도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술식과 기기의 개발에 따라 이러한 치료 계획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니 이 수많은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잔존골 4mm를 기준으로 측방 접근이냐 치조정 접근이냐를 결정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 모든 변수들, 즉 다양한 고려 사항들을 모두 아우르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

본질의 본질로, 근간의 근간까지 들어가면 남는 하나의 원칙! 바로 그 대원칙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구해질텐데’라는 생각에서 문헌 검색을 시작했고, 우연히도 주역이라는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잘 알려진 대로 주역, 서경, 시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은 사서삼경이라 알려져 왔고 이 서책들은 선비들이 벼슬길을 나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바이블이다.

이중 주역은 말 그대로 주(周)나라 시대의 역(易)으로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깊은 철학의 서적이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의 하나로서 음과 양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모든 섭리를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의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라이프니츠도 주역에 심취했고, 주역의 64괘가 이진법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해 이를 통해 세상의 근본 원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주역은 왜인지 사주, 풍수와 더불어 다소 미신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됐지만 주역의 영어 번역이 ‘The Book of Change’ 임을 보더라도 분명 우주의 변화를 최대한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임은 분명하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여하튼 주역을 통해서 상악동 거상술 치료법을 결정할 수 있을까? 팔괘를 서로 겹쳐서 이루어지는 64괘를 대성괘라고 하며, 주역의 본문을 구성하는 괘로서 각 사물의 성질을 나타내는 팔괘를 위 아래로 배치하면 되는데 이 중 상악동의 해부학적 구조물을 억지스럽게나마 주역의 64괘로 모양을 만들어 보면 택산함(澤山咸,  )의 형태가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는 바로 ‘사랑’이라는 뜻이 된다. 결국 Short Implant를 심어서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상악동 거상술을 시행하여 온전한 골을 재생하고 튼튼한 임플란트를 심어줌으로서 환자가 오랜 세월동안 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진리. 즉 “상악동은 사랑입니다”이라는 메세지가 만들어진다.

주역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필자가 참고 문헌 몇 개로 이끌어 낸 결론이므로 당연히 부실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가이드라인이 잡히는 느낌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것이 고전이 가지는 힘인가 싶다.

워낙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내가 옳다’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주역까지 들먹이며 삶의 지침을 찾고 싶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약간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존재한다는 점이며, 그 원칙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삶은 평화롭고 안정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원칙이 아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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