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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동료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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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동료 상실의 시대’
  • 정동훈기자
  • 승인 2017.08.1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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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가격’이 ‘양심’되는 프레임 벗어나야 
과잉경쟁·덤핑치과 극성에 동료의식 흐릿해져


“최소한의 동료 의식도 없는 거죠. 주변 회사부터 시작해 지역 내 상가번영회와 노인회 등과 진료협약을 맺고 할인 이벤트를 펼치는데, 주변의 조그마한 치과가 버텨낼 재간이 없죠”

강남에서 개원 중인 A 원장은 한숨을 쉬었다. 몇 해 전부터 들이닥친 저수가 치과들의 공세가 심상치 않다.

2호선과 분당선이 가로지르는 선릉역에 분포된 치과 수만 30여개. 개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수가 치과 네트워크와 할인 이벤트로 환자를 대거 유인하는 치과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월세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치과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곳곳에 거미줄처럼 들어선 대형 네트워크 치과와 할인 이벤트를 남발하는 치과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치과들은 주변 아파트단지와 진료협약을 맺기 위해 주민자치단체나 친목단체의 임원들에게 무료로 시술을 해주거나 금품 뒷거래와 같은 온갖 부정까지 일삼는다.

비급여 진료 할인 이벤트를 진행해 무차별적으로 환자를 모아온 저수가 치과들은 돌연 폐업하고, 대표 원장이 잠적하는 등 환자들의 피해가 일파만파 커져 주변 치과들이 환자들이 진료 뒤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저수가 남발과 할인 이벤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네치과들은 이제는 설상가상 전문의 타이틀을 내건 광고와도 싸워야 한다.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일부 전문의들과 개원의들이 전문의 자격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허위로 사칭해 환자 모시기에 열을 올린다.

‘치과 전문의 상시 상주하는 곳’, ‘국가가 인정한 교정과전문의’, ‘가격과 광고에 현혹되어 평생 한번 뿐인 교정치료를 비전문가에게 맡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치과의사 전문의 자격증은 치과의사 면허증과 다르다’ 는 식이다.

치과의사 공급이 늘고, 개원을 하려고 해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상황에 같은 동료 치과의사라는 의식은 사라지고 경쟁자라는 인식만 남으면서 끝없는 신경전만 벌이고 있다.

과거처럼 A치료를 잘하는 치과에서 B치료를 잘하는 치과로의 환자 리퍼나 B치료를 잘하는 치과에서 A치료를 잘하는 치과로 리퍼 하는 것은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환자 리퍼를 요청한 뒤 환자를 가로채가는 얌체치과도 있다. 부산에서 신규 개원한 C치과는 사랑니 발치를 전문적으로 한다면서 주변 치과들에게 리퍼를 요청했다.

신규 개원한 후배 치과의사의 요청에 주변 치과 개원의들은 사랑니 발치가 필요한 환자를 C치과에 리퍼 했다. 그러나 C치과는 사랑니 발치 외에도 임플란트나 교정 등의 비급여 진료를 리퍼 보낸 치과보다 싸게 해준다며 환자를 가로챘다. C치과를 믿고 환자를 리퍼한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믿었던 동료에게 발등이 찍힌 꼴이 돼버렸다.

수가 덤핑치과의 대다수는 ‘가격’ 프레임으로 승부한다. 치과진료를 단지 가격만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치과의사들은 가격의 프레임에 치과진료를 가둬놓고, 과잉진료를 양산한다. 

가격에 갇힌 치과진료는 가격이 ‘양심’과 ‘비양심’을 가른다. 모든 것을 가격으로 결정하고, 싼 치료가 ‘양심’인 것처럼, 동료 치과의사들이 들이는 노력과 환자에게 들어가는 재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고가가 되는 진료는 ‘비양심’인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인식시킨다. 

최근 논란이 된 양심치과 논란처럼 ‘과잉진료 안 하는 치과의사’는 일반인들이 평가하기 쉽다. 적은 진료비용, 최소의 치료계획 등은 양심치과로 소문나면서, 너도 나도 치과치료를 받겠다고 줄을 서게 만든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치과의사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전문직이 가져야할 윤리와 책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잉경쟁과 동료 의식 상실 등으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점점 잊혀 가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나온 의학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에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의료인들을 풍자한 ‘히포구라테스’ 선서가 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는 고객의 외모와 재력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보증인의 지갑상태를 고려해 과업을 착수하겠노라.

내정의 비밀을 간파해 의업의 편법과 사이비 정신을 계승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원수처럼 시기하고 모함하겠노라.

학연, 지연, 혈연, 피부 색깔 등을 고려하여 오직 목 좋은 곳을 골라 착취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간주해 수탈하겠노라.

비록 모욕을 당할지라도 해박한 나의 지식을 돈벌이에 어긋나지 않게 철저히 위장하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욕망의 그래프로 나의 공명심을 받들어 실천하겠노라.’

풍자는 풍자로 끝나야 한다.

풍자는 풍자로 끝나야 한다. ‘싼 가격’이 ‘양심’이 되고, 과잉경쟁으로 인해 동료의식이 사라져 가는 개원가. 다시 한 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상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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