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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종 학생의 핀포인트] 레밍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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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종 학생의 핀포인트] 레밍은 억울하다
  • 박연종 학생
  • 승인 2017.08.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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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종(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

최근 충청도의 어떤 도의원이 “국민들은 설치류 ‘레밍’과 같다”라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22년 만에 최악의 폭우로 물난리를 겪는 도민들을 뒤로하고 관광일정이 잡힌 유럽 연수를 다녀와 한 말이다.

충북의 수재민뿐 아니라 뉴스를 통해 이를 접한 전국의 국민들도 경악했다.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에 지친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레밍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야단법석인가. 신문에 올라온 문장 그대로 옮긴다. ‘집단자살을 한다고 알려진 설치류로, 우두머리 쥐를 따라 줄지어 달리는 습성이 있다. 무리 지어 이동하다가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는 일도 있다. 맹목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빗댈 때 사용한다’ 강자에게 우르르 몰려가 집단을 형성하고, 그 길이 절벽 아래인지도 모른 체 무조건 달려가다 떨어져 죽는 미련한 집단. 레밍에게 씌워진 오명이다.

레밍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은 1958년 디즈니에서 제작해 그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White Wildness’라는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줄로 절벽을 향해 달려나가는 레밍들의 모습은 각색된 연출과 과장된 내레이션에 의해 집단자살에 이르면서도 이를 거스르지 못하는 어리석은 무리의 대명사가 됐다.

이후 60년 가까이 지속되며 지구 반대편까지 퍼져 나간 것이다.

동물실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생쥐나 하수구에 주로 서식하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궁쥐와 달리, 주로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는 레밍은 비단털쥐과에 속하는 노르웨이 나그네쥐를 지칭한다. 한 번에 10마리 이상 낳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기에, 한 지역에 정착한 후 개체군의 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다 개체 수가 일정 숫자 이상 증가하면 건강한 성체들이 본래 군집지를 떠나 새로운 먹이와 거주할 공간을 찾아 이주하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얼룩말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면 병약하고 노쇠한 개체들이 점차 뒤로 처지다가 결국 희생양이 되는 것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개미들이 일렬로 줄지어 움직이는 것처럼, 개척자 레밍 무리는 제일 강하고 빠른 쥐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일렬로 줄지어 이동을 시작한다. 시력도 약하고 바로 코앞의 냄새만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천적이 나타나 동료가 죽더라도 그다음 개체들은 이동을 멈추지 않고 지나가며 천적의 공격을 벗어난다. 널리 알려진 바와 다르게 레밍들은 수영에도 능하기 때문에 강이나 깊지 않은 호수도 헤엄쳐 건널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모험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목초지와 신선한 눈이 쌓여 있는 곳을 찾지 못하며 이동을 계속하다가 사냥을 당하거나 점차 지치면서 장렬히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집단을 떠나 모험을 감행한 개체들에게는 다시없는 불행이지만, 레밍 전체 집단을 놓고 봤을 때 이는 대단히 현명한 행동이 된다.

레밍이 특정 지역에 계속 머물면 엄청난 번식력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증하고 결국 먹이와 거주 공간 모두 부족해진다. 또 천적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사냥을 당하거나 자연재해에 의해 몰살당할 위협도 증가한다.

이 때문에 건강한 성체들이 안전한 서식지의 생존을 포기하고 탐험을 떠나는 행동은 남아있는 레밍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또 이들이 무사히 새로운 거주지를 찾게 되면 전체 개체 수가 증가하게 되는, 집단 수준에서 매우 전략적인 행동인 것이다.

저명한 진화론자로서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윌슨은, 개체들의 이타적 행위가 집단 전체의 생존에 더 효과적이며 자연은 이타적이고 상호 협력하는 집단의 생존을 선택해 왔다고 지적한다. 강자를 향해 맹목적으로 몰려가는 우매한 군중이 아니라, 가장 건강한 개체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종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사적으로 탐험을 강행하는 이타적 존재. 이것이 레밍에 대한 진실이다.

최근 양심치과로 유명한 어떤 원장님의 SNS 글과 여기에 수없이 달린 대중들의 댓글들을 보며, 문득 ‘한국사회에서 치과의사라는 이름에도 잘 못 씌워진 멍에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병원에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작금의 노력이, 훗날 ‘비양심’으로 취급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함께 떠올랐다.

페이스북을 창업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마크 저커버그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어떠한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과의사들과 대중 사이에 치과진료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지켜보며 가만히 있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치과의사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이 시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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