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8 (금)
[박기호 교수의 공감] 에듀푸어의 불편한 진실
상태바
[박기호 교수의 공감] 에듀푸어의 불편한 진실
  • 박기호 교수
  • 승인 2017.07.06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기호(경희대학교치과대학 교정학교실) 교수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자원이 빈약한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서 살다 보니 믿을 건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자녀 교육에 올인 하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로 굳어진 것 같다. 물론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처럼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얘기들이 이천 년 전에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였을 뿐이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에듀푸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에듀푸어는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가난해진 사람을 의미하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구조 분석'에 따르면 에듀푸어는 '부채가 있고 가계가 적자 상태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 지출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가구'로 규정하고 있다. 그냥 얼핏 들으면 가구 수입이 많지 않아서 에듀푸어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수입이 많은 가구도 그만큼 교육비 지출이 많아서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대한민국의 교육은 사교육 시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자 대치동, 목동 등 학원가가 유명한 곳으로 이사해 사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때의 대입 제도는 학력고사 플러스 내신이라는 한 가지 제도여서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유사한 제도로 입시 평가를 했다. 학원이 별로 없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서인지 필자도 친구들도 거의 사교육 없이 대입을 준비했었고 부모님들이 사교육에 경제적인 부담이 크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지방보다는 학원이나 과외가 비교적 많았던 서울에서도 지금처럼 사교육에 올인 해서 어릴 때부터 학원을 뺑뺑이 돌리지는 않았었다.

대입 제도가 자주 바뀌고 대입 전형이 너무나 다양해지면서 학생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학원들의 공포심 마케팅과 한 두 명인 자녀들이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합쳐지면서 지난 20여 년 동안 사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산후 조리원을 나감과 동시에 사교육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유치원생이 초등학교 고학년 내용을 학습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특목고나 자사고 입학을 위해 중학교 내용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고등학교 공부까지 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 치대 동문 모임에서 동문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치과의사들도 자녀의 사교육비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월수입이 몇백만 원인 페이닥터도 자녀의 사립초등학교 학비 등으로 힘들다고 했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개원가 동문들도 자녀의 유학비나 사교육비 등에 매달 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노후 준비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최근 수년간 치과계가 불황이어서 수입은 많이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못 줄이다 보니 다들 스스로 에듀푸어가 된 것 같다고 자조하면서 사교육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단어가 된 건 같다고 했다.

필자와 같은 학교의 교수님 한 분도 몇 년 전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강북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이사했다.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몇억 원 대출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강남에서는 전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치동 근처로 이사한 다른 교수님 얘기를 들어보면 길을 지나다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친분 있는 치과 선생님들을 만나는데 얘기해보면 모두들 치열한 학원가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니 이것이 옳은 길인가 의문이 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지친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어 반항하는 경우도 많고,  그 과정을 잘 견뎌 낸 자녀들이 원하는 대학에 간다 한들 과거처럼 대학 졸업장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결혼을 늦게 해서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아이들이 아직 일곱 살, 여덟 살이다. 요즘 아이 친구 중에 이미 몇 년 선행학습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학습을 하면 정작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중, 고등학교 시절에 지치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언젠가는 에듀푸어의 길을 갈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수입이 괜찮은 치과의사들마저 힘들게 하는 과도한 사교육 경쟁이 언제쯤 끝이 날까?

제도도 변화하고 사회 분위기도 변화해서 부모와 학생이 모두 힘들어하는 사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시절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