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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조그마한 틈조선경(예인치과의원) 원장
  • 구가혜 기자
  • 승인 2017.06.15 09:34
  • 호수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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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침주는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 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정치와 권력을 장악하고 조정을 농락한 10여명의 환관들을 이르러 십상시라고 했다. 후한서에 의하면 이들은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권력의 핵심으로 군림하며 매관매직하며 부를 축척했다.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은 황제였던 영제가 그를 아버지라 불렀을 정도로 그에게 오랫동안 공들여 그를 모셔서 권력의 핵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장양의 전횡을 알아차린 대장군 하진이 그를 살해하려하자 먼저 하진을 살해했고 분노한 하진의부하인 조조, 원소, 원술, 오광의 군사가 궁궐로 난입해 환관들을 무참하게 죽이게 되는데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고 한다. 이런 정치적 혼란을 틈타 동탁은 정권을 잡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자행하며 진류왕 유협을 후한 14대 황제 헌제로 즉위시키며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온갖 폭정을 휘두르다 왕윤,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됐고 십상시의 난이 중국 후한의 멸명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옛말을 실감나게 한다.

지난해 10월 jtbc뉴스에서 소개된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를 알리는 작은 태블릿pc 뉴스는 대통령의 사과성명에도 불구하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풍랑 속 선장도 없이 표류하는 선박과 같았던 대한민국호가 가라앉지 않고 아직까지 버텨냈던 것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많은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최순실게이트, 비선실세 의혹, 대기업 뇌물 의혹 등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 의혹을 받게 됐고, 이런 사유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발의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서 우리나라는 헌정사상 첫 번째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사태를 맞게 됐다.

5월 9일 실시된 장미대선까지 북핵문제, 사드배치 같은 굵직한 현안에 우리나라가 배제된 세계강국의 회의가 이어지고 경제위기라는 뉴스의 보도는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삶에 바쁜 내게도 심각하게 느껴졌다.

조용하고 평온한 남한산성산자락에 위치한 나의 치과 주변은 재개발확정으로 4000세대가 이주해서 어수선하고 이주에 불복한 3가구의 시위로 주변이 시끄럽다. 재개발에 항의하는 소수 불만의 외침은 대통령유세기간의 확성기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며 극성을 떨어서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줬다.

그들의 외침이 재개발현장에는 항상 있을 법한 일로 치부하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장애인이 3명이 속해 있는 3대 가족이라는 사정을 듣고 보니 맘이 편치 않았다. 철거 보상금으로는 거처를 마련하기 힘들어서 단체의 도움으로 시위를 하는 거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딱한 사정을 알고 이해가 돼서인지 도로 점거와 소음으로 인한 불평불만은 그리 심하지 않다.

2년 후에는 도로도 확충되고 위례신도시와 연결되어서 교통의 요지로 거듭나며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면 지역이 많이 발전할 거라고 한다. 이전에는 허름한 가옥들이 즐비하고 외관상 덕지덕지 수선한 흔적으로 생활의 궁핍함을 알 수 있는 집들도 있었고 파지를 줍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인심 좋고 살만 했던 동네였다. 개발로 인해 원래 거주했던 분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다시 입주하는 주민은 거의 없이 새로운 주민으로 채워질 거라고도 했다.

나는 현대식아파트가 들어서고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거주해야 동네가 발전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이 부촌을 상징하는 강남3구에 속해 있어서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낙후되고 볼품없는 가난한 동네는 밀어버리고 현대식 아파트로 채워야 발전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나이 쉰살을 넘으면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만족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없다는 걸 알게 됐고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일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민주주의라고해도 소수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도 잘 알게 됐다.

둑에 생긴 작은 구멍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큰 둑이 무너지듯이 우리가 헤아리지 못한 작은 상처가 나라를 망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 피눈물이 난다는 옛말이 있듯이 이곳에서의 나의 생활은 남의 작은 아픔에 나 몰라라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구가혜 기자  kgh@dentalari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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