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칼럼] 견강부회(牽强附會)
상태바
[이승종 교수의 칼럼] 견강부회(牽强附會)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05.24 22: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명예교수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강하게 끌어서 붙여 모은다는 말인데,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은 중국 송나라 鄭樵의 通志總書에 나오는 견합부회(牽合附會)에서 유래 되는데, 내용을 보면 ‘하늘과 땅 사이에 재앙과 상서가 만 종류요, 인간의 화복이란 어두워 알 수 없는데, 그와 같다면 어찌 벌레 하나의 괴이함과 물건 하나의 일그러짐을 모두 오행으로써 엮어 넣겠는가’로 풀이된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벌레 하나의 괴이한 행동까지도 억지로 끌어서 사용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얼마 전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여배우가 췌장암으로 사망 했는데, 그 원인이 잘못된 근관치료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 치과의사가 있어 치과계의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 분은 몇 년 전인가도 실패한 근관치료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SNS에 올려 그것을 본 치과의사 중 한 사람이 내게 복사본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 치과의사가 그러한 주장을 한 근거는 하버드 대학의 Susan Rittling이라는 연구원의 발표를 인용한 것이라 나도 흥미가 있어서 찾아본 적이 있다.

Susan Rittling 논문의 요지는 골단백질인 OPN(osteopontin)이 염증조절에 관여 하는데 OPN이 부족한 쥐에서는 치근단 염증반응과 골파괴가 정상쥐에 비해 과도하게 높게 나타났고 이러한 OPN의 생물학적 기전을 잘 연구해서 근관치료에 활용하면, 완전하지 못한 현재의 침습적인 근관치료 기법을 보완해서 오히려 근관치료의 성공률을 더 높일 수도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내용이 어떻게 해서 근관치료의 실패가 암을 유발한다는 비약적인 논리가 될 수 있는지 아연하기만 할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만성염증이 암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논리는 학계에서 전혀 새로운 내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부분의 염증이 암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약 그런 식의 논리라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종기가 있어도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잘라내야 할 것이다.

OPN이 원발성 암의 2차 전이에 관여한다는 학설은 있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실패한 근관치료가 암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몇 단계를 건너뛰어야만 이어 붙일 수 있는 엄청난 논리의 비약인 것이다.

1900년 대 초 영국의 한 내과의사에 의해 Focal Infection Theory라는 것이 발표 됐다. 내용인즉슨 내장질환을 가지고 있는 자기 환자들의 구강상태를 조사해 봤더니 나무의치나 녹이 슨 금속물질 등 불량 보철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구강 내에 불량 보철물이나 염증치아가 있을 때에는 발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수 없이 많은 죄 없는 치아들이 뽑혀 나갔다. 그때만 해도 치과의술이 매우 비과학적이고 염증의 기전에 대한 지식이나 근관치료의 기법이 아주 초보 상태였기 때문에 근관치료의 성공률이 매우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발표되는 근관치료의 성공률은 대부분 90% 중반 대를 상회한다. 즉 90% 이상의 치근단염증은 근관치료에 의해 해결될 수 있고 실패 하더라도 치근단수술에 의해 다시 80%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설령 이 수치가 과장된 것이다 하더라도, 치과의사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자연치아를 보존 시키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

모든 치료에는 잃는 것과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아스피린 한 알을 먹어도 점막성출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항생제 한 알도 간이나 신장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염증치료를 위해 그런 정도의 부작용은 당연히 감수한다. 모름지기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자기가 어떠한 행위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잃는 것과 얻는 것의 무게를 재어 봐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해야만 한다.

만약 의료인이 환자가 얻을 이익은 무시하고 잃는 것만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이는 마땅히 견강부회로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