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0:51 (수)
[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1년의 길이
상태바
[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1년의 길이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7.05.18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철(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교수

 

인간에게 1년은 얼마나 되는 시간일까? 어느새 2017년도의 중반에 접어들었다. “2017년의 첫 날을 맞이한지가 어제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그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유난히도 빠르게 지나가버린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사실 1년이란 기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대에 묶여 1년을 보냈던 이들도 잘 버텨낸 것을 보면 말이다. 모스크바 생의학문제연구소의 보리스 모루코프는 사람이 무중력 상태에서 오랫동안 지내면 무슨 일이 지내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구 상에서는 무중력 상태를 장기간 경험할 방법이 없었기에 피실험자들을 머리 쪽이 6도 낮게 기운 침대에 눕혀두는 방법을 통해 무중력 상태를 시뮬레이션했다. 이 자세를 취한 이들은 자연히 심장 부하가 줄어들었고 부하가 적어진 근육과 뼈대가 부분적으로 퇴화하게 됐다. 이 실험은 처음에는 며칠, 몇 주간 진행됐지만 결국에는 370일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로 확대됐다.

열한 명의 남자들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 생활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27세에서 42세 사이의 혈기 왕성한 남성들에게 말이다! 이들에게는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근력 운동을 하거나 수직으로 세워둔 러닝머신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됐고 가족은 일요일에만 만날 수 있었다.

방 세 개에 나뉘어 수감(?)된 이들은 우주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알루미늄 캔 음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는 시도도 있었지만 2주가 지나자 포기하고 말았고, 참가자들끼리 사이가 좋아지지 않아 방을 재배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6년 1월 시작된 이 연구는 놀랍게도 단 한명의 탈락자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사실 피실험자들에게는 연구 종료 시점에 자동차가 무상 제공되도록 약속돼 있었는데 탈락한 사람은 자동차가 이미 있었다고 하는 웃픈 사연이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침대에 묶여서 지내야 했던 건강한 이들 피실험자들은 생각만큼 조바심을 내거나 괴로워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먹던 알루미늄 캔 음식의 껍질로 장신구를 만들어 간호사들에게 선물을 해 주었고 그 와중에 어떤 피실험자는 여성 연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에게 도대체 불가능이란 없는 모양이다.

광속과 같이 빨리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는 우리들은 더더욱 가속을 받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짧아지는 것은 일상의 반복 때문이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놀라움과 설레임으로 채워보라는 뇌과학자의 조언이 떠오른다.

내일 하루도 똑같은 하루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침대에 묶여서도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했던 낙천적인 러시아의 남성들처럼 살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참고로 이 획기적인 연구의 결과는 과학 저널에 출판돼 전설로 남게 됐다(In vivo bone mineral studies on volunteers during a 370-day antiorthostatic hypokinesia test. Zaichick YeV, Morukov BV. Appl Radiat Isot. 1998 May-Jun;49(5-6):691-4.).

안타깝게도 여성 연구자와 사랑에 빠진 피실험자는 어찌 되었는지 소식이 없다. 기묘한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