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칼럼] 留一步與人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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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留一步與人行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04.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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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멈추어 남을 먼저 가게 하라는 뜻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로 전문을 보면 徑路窄處,留一步與人行.滋味濃的,減三分讓人嗜(경노착처,유일보여인행.자미농적,감삼분양인기). 此是涉世一極安樂法(차시섭세일극안낙법)이고 ‘작고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 멈추어 남을 먼저 가게하고, 맛있는 음식은 3분을 덜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즐기게 하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극히 편안하고 즐거운 하나의 방법이니라’로 해석된다. 

현직에 있을 때와 달리 요즘은 급히 다닐 일도 별로 없어서 외출을 할 때는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일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그런데 난처한 것이 지하철을 타면 가끔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노인석 앞에 서거나 어쩔 수 없이 통로에 설 경우는 일부러 책을 읽는다. 적어도 서서 책을 읽을 정도면 아직은 너희들 신세 안 져도 된다는 일종의 시위이다. 가끔 젊은이들의 철없는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참 착하다. 그렇게 호기를 부리고 서 있어도 앞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은 뭔가 불편한 기색이 보이고 아니면 적어도 스마트폰에 고개를 쳐 박고 못 본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노인들의 꼴불견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 언젠가 사람이 없어 텅 비다시피 한 전철을 타고 가는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젊은 여자 앞에 앉아있는 노인이 당신 임산부 맞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어안이 벙벙해서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표정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여자가 앉아있는 좌석 위에 임산부 좌석 표지가 붙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전철 안이 텅 비어 있어 어디 앉아도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까지 면박을 줄 일이 있나 생각됐다.

작년인가, 뉴스에 ‘70대 노인의 임산부폭행’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70대 노인이 노인석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에게 자리 때문에 힐책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젊은 여자는 임산부 였는데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아서 노인이 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이다. 이러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비단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서양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배려를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이다.

문을 열고 건물에 들어 갈 때 문을 닫기 전 당연히 뒷사람이 오는가를 확인하고 바로 뒤에 사람이 있으면 문을 잡아주는 것이 예의이고 배려다. 그런데 가끔 성장을  한 아가씨 들이 자기 몸만 쏙 빠져 나와서 문을 잡고 있는 내 앞을 싹하고 가로질러 가는 경우가 있다. 내가 무슨 문지기인가, 화가 나지만 쓴 웃음만 지을 뿐이다. 영어에도 ‘1인치를 주면 1마일을 가져간다(Give him an inch and he will take a mile)’라는 속담이 있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모습들은 비슷한가 보다.

30여 년 전 미국에서 생활을 시작 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그네들의 운전문화였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교차로 가로막기에 대한 벌금이었는데, 그 당시 웬만한 벌금은 다 30~50불 정도 였는데, 유독 교차로 가로막기는 300불의 높은 벌금이 부과 됐다. 그것은 교차로를 막고 있는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차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운전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옆과 뒤를 보면서 운전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것이 전체 사회구성원인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질책하기 전에 그 사람의 상황을 유추해 보는 것, 그것이 배려이다. 아까 나왔던 임산부 사건도 그 사람을 질책하기 전에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길거리에 마구 주차해 놓은 차를 보고는 오히려 관대하다고 한다. 오죽 급한 일이 있으면 그럴까 한다는 것이다. 짜증나고 부딪히는 일이 있을 때 한걸음만 멈추었다가 가는 여유, 그것이 바로 남을 이해하려는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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