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트럭여행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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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트럭여행⑤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01.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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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색 Orange River
일몰이 아름답다.


오늘은 장장 600km를 달려 나미비아 접경까지 가야 한다. 새벽 6시 동도 트기 전에 일어나 텐트를 접고 오트밀과 씨리얼로 식사를 하는데, 모두들 밤사이 추웠기 때문인지 먹는 군상들이 영락없는 노숙자들이다. 캠핑 첫 아침식사 신고식을 대충 마친 후 7시 20분 해뜨기 전에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니 풍경이 점점 사막화 돼간다. 사막이라도 사하라사막 같은 모래사막이 아니라 미국 네바다 주에서 볼 수 있는 마른 관목들이 군데군데 서 있고 부러진 관목 더미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Bush Desert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도 못 읽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색하는 것과 음악 듣는 일 밖에는 없다. 말이 사색이지 밤새 추위에 떨다가 아침을 먹자마자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기온이 점점 올라가니까 오는 건 잠 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이 깨는데, 이렇게 자다가는 밤에 제대로 못 잘 것 같아 음악을 듣기로 했다.

황혼의 강물 빛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든 오렌지 리버.


무슨 음악이 Bush Desert와 어울릴까? 처음에는 시벨리우스를 골랐는데, 아프리카 사막의 풍경이 음악 속 북구의 쓸쓸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악의 화려함은 더욱 아닐 것 같다.

말러 교향곡 2번을 들어보자. 현악의 묵직한 울림과 쓸쓸한 목관이 아프리카의 검은 대지 속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처연한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을 대변하는 것 같아 어울린다.

말러는 워낙 많이 들어 익숙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오보에 나와라, 첼로 나와라 지휘를 하다보니 그런대로 재미있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언제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비움의 시간을 갖는 것도 여행의 소중함이다.

만약 내가 아프리카 영화를 만든다면 반드시 말러 음악을 배경으로 사용하리라.

아침일출도 한 폭의 그림이다.


그 뒤로는 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노마드에서 보내준 일정을 보고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겠구나’라고 각오는 했지만 아프리카 도로라는 것이 거의 포장돼 있지 않고, 포장돼 있어도 노면이 고르지가 않아서 빨리 달릴 수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노마드의 교육 덕분인지 운전자들이 거의 정속운행을 하기 때문에 다소 답답할 정도다. 더구나 Overland Trucking 차량은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차량 아닌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그나마도 오늘은 포장도로지만 내일부터는 전부 비포장도로란다. 죽었다고 복창이나 해야겠다. 돌이켜보면 텐트 생활이나 먹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트럭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오후 5시쯤 오렌지 리버 강가에 있는 Fiddlers Creek Campsite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쇠고기스튜와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거의 가리는 음식도 없고 한국음식도 냄새만 맡지 않으면 굳이 찾아서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그래도 밥이 나오면 반갑다.

그룹에 동양사람들이 있어서 배려를 해주는가 했더니 저녁은 보통 육류가 들어간 스튜나 카레로 조미한 바비큐를 하기 때문에 거의 밥이 따라 나왔다.

또 아침 점심을 빵으로 먹다 보니 서양 사람들도 지겨운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나쁠 것 없고 특히 한국에서 온 두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한국음식이 그립기 때문에 밥에다가 가져온 고추장을 섞어서 맛있게도 먹는다.

캠프장에는 항상 바가 있어서 저녁을 먹으면 사람들이 바에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 이야기도 하고 와이파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날은 마침 나미비아와 남아공을 경계하는 오렌지 강가에 있어서 해질 무렵 모두 강가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황혼의 강물 빛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반사된 앞산의 그림자가 강물 위에 비치는데,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마 이래서 이 강 이름이 오렌지 리버인 모양이다. 바로 이런 것을 보러 그 먼 길을 온 것이다.

Ostrich Cabbage에서 물을 얻는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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